대일 권진영
동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여자고등학교 교법사
안녕?
고등학교 신입생의 앳된 모습으로 새 교복을 단정히 입고 첫 수업에 임하던 네가 벌써 수능시험을 목전에 두고 있구나. 요즘도 교정에서 여전히 환한 미소로 인사하지만 가슴속에 수능 속앓이를 하는 너의 얼굴이 생각이 나 너에게 편지를 쓴다. 우스갯소리로 남자의 가장 끔찍한 악몽은 군대를 갓 제대한 청년이 꿈에 다시 입영통지서를 받는 것이고 여대생의 경우 꿈에 고3 교실에서 수능 공부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더라. ㅋㅋ
많이 힘들지?
그런데 우선은 힘들고 괴롭더라도 마음속으로 좋은 상상만 하면 좋겠다. 긍정적 착각이라는 말이 있듯이 노력한 만큼의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마음을 다잡아 보면 긴장과 불안은 어느 정도 사라지게 된단다. 우리의 뇌는 이 세상 어떤 컴퓨터 보다 우수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하지만 한편으로 참 단순한 원리로 작동 된다고 하더라. 무슨 말인고 하니 뇌는 상상한 것과 경험한 것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것이란다. 즉, 긍정적 착각을 굳게 하면 착각이 아닌 실제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지. 거짓말 같다고? ㅋㅋ
그럼 우리 실험하나 해볼까? 우선 아주 신 레몬을 하나 입 안 가득 베어 문다는 상상을 해보아라. 아마 입에서 침이 고일거야. 실제로 레몬을 먹지 않더라도 레몬을 먹은 상상이 입에 침이 고이는 실제 현상을 경험하게 하지 않니? 어차피 걱정과 불안감을 가지고 고민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면 우리 긍정적 착각 한번 단단히 해보자. 햇볕이 따뜻한 교정의 벤치에서나 졸리는 야간자율학습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조용히 눈을 감고 다 잘되리라는 자기암시를 해보거라. 사실 눈만 감고 앉아 있어도 뇌파가 안정화된다고 한다. 즉, 명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란다. ‘당신이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 희망은 절대 당신을 버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너의 마음의 힘을 키워나가 좋은 결과를 거두기를 바란다.  
언젠가 내가 너에게 다소 엉뚱한 질문을 했던 적이 있는데 기억하니?  “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고, 누구보다 잘 할 수 있고, 가장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니?”라고 물어보았지? 당시 넌 배시시 웃으며 얼른 답변하지 못했었지? 사실 금방 답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었단다. 그 질문의 답은 많은 체험과 깊은 사고의 결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물론 시간도 많이 필요한 것이지. 흔히들 수능시험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공부의 최종 평가라고 하더라. 그런데 나는 이 말이 공부의 끝이라고 오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능은 ‘결과’이자 동시에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고등학교 이후의 삶의 과정이 인생에 미치는 결과가 얼마나 크니? 취업과 승진, 결혼과 육아, 중년과 노년의 삶의 질 등을 생각해보면 수능 이후의 인생을 보는 안목이 더욱 절실한 것이 아니겠니? 지금 당장 부모님의 걱정과 주위의 시선 그리고 너 자신에 대한 기대치도 중요하지만 너는 너의 인생의 주인공이 아니니? 인생이라는 연극의 주인공으로서 행복한 삶을 살려면 네가 가장 재미있고 남들에 비해 월등히 잘하고 그리고 네가 생각하기에 가장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한단다.
이러한 의미에서 통도사 극락암에서 주석하시며 후학들의 지혜의 눈을 뜨게 하셨던 경봉 큰스님께서 “사바세계를 무대로 연극 한번 멋지게 하거라.”라고 하신 의미를 깊이 음미해보면 참으로 큰 가르침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의 대부분의 고통은 ‘나’와 관계 되었을 때 발생한단다. 넌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이 기아와 질병에 의해 죽어간다고 깊은 괴로움을 느끼니? 물론 잠깐 슬퍼하거나 동정의 눈물을 흘릴 수는 있지만 지속적인 불안과 공포로 이어지지는 않지 않니? 핵무기의 공포나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질병의 창궐 등도 마찬가지로 잠깐 동안의 근심과 걱정이 될 뿐 근본적인 너의 고민은 아니잖니? 오히려 ‘나’의 알량한 자존심을 다치거나 ‘나’의 이미지가 손상되었을 때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워하니? 또 ‘나’와 ‘남’을 비교했을 때 느끼는 ‘나’의 열등감은 또 얼마나 마음을 아프게 하니? 그런데 그 ‘나’는 경봉스님께서 말씀하신 연극의 주인공은 아닐 거야. 연극무대는 알다시피 영원한 것도 아니고 실재하는 것도 아니란다. 그런 연극무대의 연기자도 마찬가지로 영원하거나 실제 인물이 아니란다. 그냥 그 연극의 역할에 충실한 배우일 뿐이란다. 또 다른 연극의 무대가 세워지면 그는 또 다른 역할을 충실히 하겠지? 다른 연극의 역할이 주어지면 미련 없이 그전의 역할을 잊고 새로운 캐릭터에 몰두하는 그 배우가 ‘참 나’에 비유될 수 있단다.
자유인인 ‘참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 가장 잘하는 일,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찾은 사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자유인은 본질적이지 않는 것에 초연하고 당당하게 우주와 역사의 중심에 서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칫 한 순간의 ‘나’에 집착하여 불안하고 초조함에 빠지거나 나태와 좌절에 빠지지 말고 항상 ‘참 나’를 생각하기 바란다. 연극이 끝나면 무대 위의 같은 배역은 두 번 다시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두 번의 기회가 없는 인생의 연극무대에 서있다. 그래서 매순간 후회가 없는 열정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거란다.
현재의 ‘나’의 마음자리의 크기에 널 한정시키지 말고 끊임없이 너의 마음자리의 크기를 키워나가 너의 삶을 완성하고 이웃과 나누는 삶을 살아가는 ‘참 나’로 살아가기를 발원하면서 이만 글을 줄인다.
2011년 9월 추운 가을날 너의 眞多 법사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