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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아픔은 있지

수덕스님
가평대원사 템플스테이관장


사람들은
허허롭게 웃고 있어도
누구나 남모를 아픔이 있지


그대가 겪는 아픔의 경험은
그대만의 것이니 해결책도
그대만의 것이라


사람의 가치는 말과 행동이 아니고
행동과 실천이듯이
아픔을 넘지 않으면 모자 쓰지 않은 허수아비같은 것


그대
어느날 빈들판에 서거든
바람에 날아간 허수아비의 밀짚모자를 씌어주시게


혹 몰라
그것이
우리의 마음 한켠을 채워줄런지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이 배우지
그 아픔을 통해서도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서있는 허수아비처럼...


들판의 허수아비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서있는 것처럼 우리가 서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 나의 위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의 꼴의 값을 모르는 것입니다.
꼴값 말이지요.


꼴값은 자기의 위치(position)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래 포지셔닝(Positioning)은 기업이나 제품에 대하여 위상을 정립하기 위해 마케팅 믹스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자사 제품의 정확한 위치를 인식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1969년 잭 트라우트(Jack Trout)가 학술지인 인더스트리얼 마케팅(Industrial Marketing)에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 사용하였습니다. 이후 앨 리스(Al Ries)와 잭 트라우트(Jack Trout)가 공저 《포지셔닝》을 발표하며 광고 산업과 경영계에 큰 영향을 끼친 이론입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서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위치(Position)는 지금까지 자기 인생의 궤적을 바라보면서 현재와 미래를 조명해보려고 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위치를 알지 못한다면 현재도 미래의 설정도 잘못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치(Position)는 바로 내가 누구인가를 제대로 인식하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때 비로소 나는 지금 어디쯤 있는 것일까에 대한 성찰이 시작됩니다.
이름하여 나를 찾는 자아로의 여행이 되는 것이지요.
과연 우리들은 각자의 위치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
인생의 어디쯤에 있으며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가지고 있는가?
그것을 바로 이해하고 있는가 입니다.
이것이 잘못되면 목표(Target)도 틀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른 위치(Position)에 의해 바른 목표를 가지며 이것을 바탕으로 비젼(Vision)을 성취하거나 깨달음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서양철학에서는 자아를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우리의 자아가 우리의 머리통에 자리 잡고 있고 그것이 우리의 정신적 정서적, 그리고 의도적 행위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나는 일정하게 규정되고 그래서 다른 것들과 명확하게 구별되는 불변적인 단위”인가? 이것이 인간을 규정하는 문구입니다.


* 나는 먹는다. 그것이 바로 나다.
* 나는 입과 똥구멍의 총체이다.
* 나는 감각의 총집합이다.


인간의 뇌에 존재하는 것은 나가 아니었습니다. 외부 세계의 요소들과 왕성한 정보교환 속에서 산더미처럼 파생된 감각들이 뇌 안에 어지럽게 쌓여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팔정도에서 정견을 처음으로 올려놓으시고 바로 보고 바른 견해를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나의 나라는 개념은


* 나 스스로를 평가하였을 때의 나와
* 타인이 나를 보고, 경험하여, 갖는 정보를 바탕으로 그 사람의 생각에 의해 비로소 객관화가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원합니다. 생각은 거의 대부분 의식적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생각은 무의식이 주도하는 현상입니다. 물론 이 무의식이 이끄는 것은 유전자이기도 하고 사회이기도 하고 우리의 업(業)에서도 이루어집니다.
뇌는 고도의 조직망을 갖춘 체계입니다. 1조 단위를 훌쩍 넘기는 신경세포를 상상할 수 있습니까?
1조 개의 신경세포 각각은 다른 세포와 결합되는 시냅스를 갖고 있는데 그 수는 1만 5천개가 넘습니다.
상상의 한계를 초월하는 숫자지만, 그만큼 뇌의 복잡함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수많은 세포와 그 결합으로 뇌는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하며 서로 결합해 새로운 정보를 생산합니다. 이 덕에 우리는 ‘나’라는 말을 하고, 자신에게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의식적으로 원하는 행위에는 언제나 무의식의 결정 과정이 진행됩니다.
즉 모든 의식적인 생각에는 무의식의 선택 과정이 이미 앞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의식 이전에 무의식이 앞서 결정합니다.
나는 행동의 주체이고 대상으로서의 나는 평가하는 주체입니다. 자기평가라는 대상으로서의 나가 나에게 발급해주는 주관적인 증명서입니다.
그러므로 깊은 명상을 반복하는 훈련을 통하여 새로운 인식을 각인시킬 수 있습니다. 즉 무의식에 들어가 결정과정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나를 찾는 자아로의 여행”에 4단계 프로그램의 순서를 갖습니다.



1stage.
나는 누구인가를 통하여 나를 제대로 알기 / Who am I?
2stage.
나를 바로 이해하기
/ I am understanding.


3stage.
나를 용서하기 / I am forgiveness.


4stage.
순수의 나를 받아들이기 / Well come.


이 네 개의 장(場)을 통하여 다음의 문장을 이해하고 한 단계 진화된 영성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


* 사람은 누구나 크든 작든, 훌륭하든 보잘 것 없든 모든 행위가 자기 자신의 마음을 만족 시키기 위한 동기에서 출발했다는 것


* 우리가 갖는 모든 의무감 또한 그것이 의무라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하지 않으면 우리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나 이외에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우리가 속고 있는 순수한 생각일 뿐입니다. 그 근원적인 충동도 우리들의 본성과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것이고 이렇게 해야 우리들의 영혼이 평화를 얻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