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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선택을 위한 좋은 대화의 자리 많았으면

최윤필
한국일보 기자


‘산바’라는 이름의 초대형 태풍이 또 한반도를 할퀴고 지나갔습니다. 인간은 축적해온 지혜와 경험의 힘으로 늘 대비책을 마련하지만 거의 언제나 그 거대한 바람에게서 상처를 입곤 합니다. 과거의 참혹했던 몇몇 경우에 비하면 덜하지만, 올해 역시 많은 이들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 쓰린 숙명의 자각은 우리로 하여금 비바람에 맞설 수 있는 지혜와 함께 바람의 자비를 기원하게 합니다. 스스로의 한계에 대한 자각과 함께, 자연이 한결같이 자비로운 존재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도 합니다.
태풍의 원인은 다양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궁극적인 원인은 우리가 살고 있고 아직 그 어떤 대안도 마련하지 못한 지구라는 이 푸른 행성과 태양계, 나아가 우주라는 광대무변의 환경 속에 있을 것입니다.
기상과학자들은 지구의 모양이 가운데가 불룩한 구형이어서 적도 주변 열대 바다의 일조량이 많다는 사실에서 태풍의 원인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즉 데워진 대기는 공기 입자간 간격이 넓어져 밀도의 공기압이 낮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낮아진 기압대의 대기 중심부로 덥고 습한 열대의 공기들이 급속히 빨려 들어갑니다. 데워진 공기와 바다의 물 입자는 적란운이라는 구름을 형성합니다. 구름은 비를 뿌리고, 데워진 공기는 식으면서 더 큰 열을 방출하고 더 많은 물 입자를 떠올려 더 큰 비구름을 형성합니다. 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거대해진 구름은 지구의 자전 방향을 따라 소용돌이처럼 주변 대기를 휘감으며 열대성 저기압, 곧 태풍으로 성장한다는군요. 
한 마디로 태풍은, 얼굴 시뻘개지도록 오래 호흡을 참다가 맹렬하게 토해내는 숨처럼, 지구의 모양과 자전의 운명, 태양의 존재 탓에 한 데 모여 폭발하기 직전까지 뭉쳐진 지구의 대기에너지가 토해내는 비바람인 셈입니다. 그것은 인체대사처럼 불가피하고, 또 어쩌면 지구나 태양의 존재처럼 우리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 지구라는 자연의 자연스러운 대사 순환 과정에 아무런 부담을 끼치지 않고 태풍을 완벽히 잠재울 수 있는 지혜를 인류는 아직 구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과학의 제한적 힘으로 최대한 대비책을 마련할 따름이지요.


작위적이고 유치하게 여겨질지 모르겠습니다만, 세상일도 태풍의 순환과 흡사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우리 인류가 경험해온 숱한 전쟁과 혁명, 또 거대한 파장을 불러온 종교적 민족적 대중운동들을 흔히 태풍의 소용돌이에 비유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그 긴장의 에너지가 폭발 직전까지 응축되는 과정은, 태풍처럼 다양한 변수들의 복합적인 작용 탓입니다. 독재적 정치 지도자의 학정이나 탄압이 원인일 수 있습니다. 절대왕정의 부패와 억압에 맞서 폭발했던 프랑스대혁명이나 미국 독립혁명, 우리의 동학농민전쟁이나 일제 강점기의 3.1운동 등이 그 예가 될 것입니다. 시청 앞 광장과 광화문을 가득 메웠던 촛불의 열기도 대중과 정치가 소통하지 못해 맺힌 울분의 태풍일 것입니다. 그런 저항적 폭발은 불가피한 선한 태풍입니다.
반면에 일부 국가나 민족, 일부 변태적 지도자의 세계 권력에 대한 과도한 탐욕이 불러일으킨 사악한 태풍도 있습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나 알제리 내전, 그리고 인류가 경험해 온 몇 차례의 거대한 종교전쟁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물론 복잡한 시대적 배경과 주체들 간의 역학관계 등이 전제돼야 할 일이지만, 그들이 촉발시킨 태풍은 저항적 폭발이 아니라 약탈적 폭발이었습니다. 역사의 가정이란 무의미한 것이겠지만, 그것들은 시대의 맥락 안에서 불가피해 보일지라도 어찌 했으면 모면할 수도 있었고, 또 어떻게든 모면했으면 좋았을 태풍입니다. 그러지 못하는 것이 인간과 자연의 차이, 자연의 지혜를 닮지 못한 인류 지체遲滯의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자연의 태풍에 최대한 대비하기 위해 우리가 기대는 것이 과학이라면, 사악한 인간의 태풍을 차단하기 위해, 곧 지체된 인류의 지혜를 분발시키기 위해 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은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 반성적 인식일 것입니다.
히틀러와 나치즘이라는 태풍의 눈에 휩쓸려 들었던 20세기 유럽의 역사, 당시 독일의 시대적 상황과 독일 국민들의 정서 등을 통해 역사적 교훈을 얻음으로써만 다시 히틀러와 같은 변태적 정치인이 나타나지 못하게 할 수 있고, 설사 나타나더라도 득세할 수 없게 저항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사마 빈 라덴과 같은 지도자를 사라지게 한다고 해서, 또 서방 국가들이 모든 정보력을 동원해 알카에다 조직을 와해시킨다고 해서 9.11같은 참변, 곧 사악한 태풍의 눈을 소멸시킬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직 반성적인 깨우침을 통해 근원적인 해법을 구하고 진솔한 마음으로 그 해법을 실행하는 것만이 태풍에 맞설 수 있는 길일 것입니다.


가구 만드는 일을 배우면서 제가 가장 곤혹스러웠던 것은 깊이에 대한 개념을 체득하는 거였습니다. 평면에 익숙한 저는 가로 세로만 따져왔지 두께를 인식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저와 비슷한 이도 있을지 몰라 질문 하나 해보겠습니다. 1000㎜ 길이의 나무를 2등분하면 500㎜짜리 두 개가 나올까요? 수학적으로는 맞습니다. 하지만 나무를 이등분하면 489.5㎜짜리 두 개가 나옵니다. 나무를 자르는 톱날의 두께가 약 3㎜이거든요. 책상을 쓸 때는 면적(가로×세로)만 따지지만 책상을 만들 땐 상판의 두께까지 감안해야 원하는 상판의 높이를 맞출 수 있습니다.
현실에 대한 인식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우리의 좌표는 공간 위의 가로와 세로뿐 아니라 개인의 생애, 그리고 역사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시간적 좌표가 나란히 그려져야 제대로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 인식입니다. 두께는 평면이 아닌 입체, 면적이 아닌 부피를 구현합니다. 그리고 입체와 부피만이 깊이를 지닙니다. 깊이를 지니지 못하는 사람을 우리는 허상, 그림자 같은 존재라고 하기도 합니다. 정확한 좌표의 설정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려 할 때 가장 먼저 구해야 할 바입니다.


지금 우리 앞에는 거대한 정치적 태풍이 잉태되고 있습니다. 12월 19일의 대통령 선거입니다. 변수는 있지만 이미 입후보자의 윤곽이 대충은 드러났고, 추석 즈음이면 야권의 후보단일화를 비롯한 사실상의 대권 쟁투가 본격화할 전망입니다. 인혁당 사건에 대한 여권 후보의 발언과 역사 인식을 두고 이미 난타전이 전개되고 있고, 또한 범야권 후보의 사생활이 여론의 도마 위에서 근거 없이 난도질되기도 했습니다. 대선을 치르게 될 12월 이후까지 한 동안 우리 역시 각자가 지지하는 후보의 돋보이는 면모와 경쟁 후보의 저급한 면들을 부각시키는 대화들을 숱하게 나누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감정적으로 격앙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편을 가르고 패를 이루게 되는 일들도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과정은 불가피하고 또 어느 정도는 필요할 것입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이고,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이며, 우리 모두는 유권자라는 이름의 행사 주체이니까요.
저는 이 미래를 향한 선택의 과정에 참여하는 우리의 좌표 안에, 역사성이라는 좌표가 반드시 개입되기를 바랍니다.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보게 되는 감성적인 인상, 치장된 유세는 평면입니다. 평면은 깊이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깊이를 은폐하거나 왜곡할 때도 있습니다. 심지어 공약의 문구 안에도 현실을 도외시하고 진실을 호도해서 우리를 현혹시키는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들의 외피 너머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좌표가 역사성입니다. 그 역사성은 후보 개인의 삶의 내력을 통해서 엿볼 수 있고, 후보를 옹위하고 있는 주변 인물들의 면면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말과 표정의 이면도 우리는 살펴야 할 것입니다.
9월은 반성과 수확의 계절이지만, 다가올 태풍에 대비해야 할 우리로서는 차분한 가을의 정취보다 말과 손가락질의 어지러운 엇갈림 속에 에워싸여야 할 것 같습니다. 예비된 태풍이라면 철저히 대비해야 하고, 선한 바람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12월의 태풍을 한국 사회의 억눌린 것들을 풀어 평화로 가지런하게 할 수 있는 힘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 나라가 아름다운 체적을 이뤄갈 수 있도록 해줄 멋진 선택을 위한 좋은 대화의 자리가 올 가을에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