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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의 공덕(Ⅱ)

편집부


불교가 이 땅에 들어 온지도 어언 1,700여 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 흘렀습니다.
돌이켜 보면 삼국시대에는 왕실의 지원은 물론 원효스님의 화쟁사상과 의상스님의 화엄사상 등이 어우러져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 피울 수 있었습니다.
또 고려시대에는 부처님의 원력으로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고자 오랜 세월에 걸쳐 고려대장경을 간행하여 민심을 하나로 모으는 호국불교의 전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부처님의 법력이 아니면 누가 있어 어려운 세파에 휩싸여 있는 백성들의 고초를 위로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후 조선조에 와서는 배불숭유정책으로 인하여 찬란했던 불교가 갖은 억압을 받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찬란했던 옛 모습을 되찾기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는 각고의 수행과 정진을 해왔으며, 일제 식민지의 아픔 속에서도 한국불교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해왔습니다.
이처럼 선조사스님들의 수행력과 정진력의 힘으로 오늘의 한국불교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부딪치더라도 반드시 불교를 지켜나가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과 의지로 불사를 끊임없이 추진해온 결과이기도 합니다.
현재 뉴욕 원각사에서 추진하고 있는 대작불사 역시 이러한 한국불교사의 역사성에 바탕을 두고 재미교포들의 신심함양은 물론 기독교국가인 미국사회에도 부처님의 법음이 널리 퍼져 지구촌 모두에 불국정토를 구현하고자 하는 지극한 신심과 정진력의 발로에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불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부처님을 찬탄하고 공경하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 할 것입니다.
둘째는 불상을 그리고 부처님의 상像을 조성하거나 탑, 사찰 등을 건축하는 일입니다.
오늘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불국사와 석굴암이 바로 우리 조상들의 대작불사의 결과입니다.
또, 불사의 목적은 그 불사를 통해 억겁 동안 불심을 전하기 위한 것이며, 불사의 현장에서 한번 올린 합장 예배는 억겁 동안 공덕이 된다고 했습니다.
『법화경』 「방편품」에서는 불사의 공덕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며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어떤 재료를 이용해서든 불상과 탑을 세우고 심지어 아이들이 장난으로라도 모래로 탑을 만든다 해도 그 모든 사람들이 다 불도를 이룩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함은 물론 남을 시켜 하거나 남에게 하도록 권하기만 하여도 불도를 이룬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불상이나 탑, 탱화에 공경심을 내어 예배하고 공양하면 점차로 한량없는 부처님을 친견하며, 위없는 보리도를 성취하여 구경에는 무여열반에 든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불사는 부처님의 법에 의지하여 오탁악세의 번뇌를 씻어낼 수 있는 의지처요, 중생의 그늘진 곳을 밝게 비춰 주는 참 도량을 가꾸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불사에 동참하는 것이 꼭 거창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불사에 참여하는 불자의 마음가짐입니다.
양나라 무제가 사찰 49곳을 지은 공덕을 물었을 때 달마대사가 “무공덕無功德”이라고 말한 것은 아무리 많은 불사에 동참을 했다 하더라도 신심보다는 남들에게 자랑을 하고 자신의 상을 나타내기 위해서 불사에 동참했다면 그 공덕은 큰 의미가 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할 것입니다.
가난한 여인이 밝힌 등불이 가장 오랫동안 불을 밝혔다는 빈녀일등貧女一燈의 교훈처럼 불사에 동참하려면 무엇보다도 자신의 진정한 마음이 깃들어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와 한 장, 벽돌 한 장을 보시하더라도 나보다 남을 먼저 위하는 보살의 어진 마음이 바탕이 된다면 불사 동참은 참다운 공덕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뉴욕 원각사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작불사에 월간 붓다와 인연있는 모든 분들의 불사에 대한 신심과 원력이 함께하기를 간절히 발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