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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불교의 청사진(1)

성운星雲 스님
대만 불광산사 개산조


대만 불광산사 개산조 성운 대사님의 단편 수상집 ‘즐거움을 뿌려라’ 연재를 지난 호로 마치고, 이번 호부터는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을 명쾌하게 제시해 주실 성운대사의 법문을 ‘인간불교’ 라는 제목으로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인간불교를 세우자!’
이 표어는 세계 불교계의 공통된 인식이자 흐름이며, 대만, 중국, 홍콩 등지에서 이미 인간불교人間佛敎가 대세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같은 대승불교권인 일본은 아직 ‘인간불교’라는 용어 자체에 생소하지만, 사찰의 개방과 승려의 사회사업 참여, 신도제도 확립, 불교계의 대학과 백화점 설립 등 인간불교의 사상과 구체적 실천을 병행하고 있다.
한국 또한 불교방송국을 설립하는 등 구태의연한 교단을 점차 현대화시키며 인간불교의 길을 걸어가고 있으니, ‘인간불교’는 역시 시대적 흐름이라 할 수 있다. 그 밖에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 필리핀 등의 대승불교 신본 지역도 이 흐름에 동참하고 있는 중이다.
인간불교는 보살도를 행하는 대승불교를 말한다. 동남아시아와 스리랑카 등지에서 이어지는 남전불교南傳佛敎는 소승과 ‘인간불교’의 초보적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최근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 등지의 지식인들 중에서도 불교 발전을 위해 인간불교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예를 들면, 수많은 대중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태국의 법신사(왓프라 담마까야, Wat phra Dhammak.ya)는 ‘법신(Dhammak.ya)’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대승보살도를 향해 적극적으로 나아가고 있다.
태국의 담마난다Dhammananda 비구니 스님은 2001년 2월 6일 스리랑카의 따뽀다라마야Tapodaramaya 사원에서 공개적으로 사미니 수계법회를 거행하여 혁신을 거부하는 전통에 도전했다. 캄보디아의 수계법회를 거행하여 혁신을 거부하는 전통에 도전했다. 캄보디아의 뗍 윙 Tep Vong 승왕, 스리랑카 서부 지역의 수좌인 빤디스 딸랄레 다르말로까Pandith Talalle Dharmaloka 장로, 스리랑카 불교팔리어대학 부학장인 꿈부루가마웨 바지라Kumburugamawe Vajira 큰스님, 인도 마하보디협회 회장 마빨라가마 위뿔라사라(Dr. Mapalagama Wipulasara) 큰스님, 네팔 불교 월간지 편집자인 아쉬와 고쉬Ashwaghosh 스님, 태국 마하츌라 불교대학 부학장 쁘라 마하 솜차이 쁘롬수완Phra Maha Somchai Prohmsuwan 등 대덕 고승들이 삼단대계(三壇大戒 : 사미니계, 비구니계, 대승보살계를 수여하는 계단)에 모두 참가하여 존중尊重 아사리를 맡았다.
불광산 국제불광촉진회國制佛光促進會는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 따뽀다라마야 사원에서 인간불교 인간불교 신간서적 출판기념회를 가졌으며, 로하나파의 주석 라훌라A. Sn Rahula 장로, 율학원 난다라따나K. Nandaratana 장로, 켈라니야 대학 철학원 소장 다야 에디리싱게Daya Edirisinghe 교수, 스리랑카불교회 부주석 세나랏 위자야순자라Senarat Wijayasundara 거사 등 승려와 신도 300여 명이 참석하여 성황리에 거행하였다.
지금가지 서술한 예로 볼 때 인간불교는 이미 전 세계 구석구석에 울려 퍼지고 있으며, 많은 대중의 인정을 받고 있다. 인간불교가 전 세계에 뿌리내리는 날이 우리 가까이 다가왔음은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다.
‘인간불교’는 어느 한 지역이나 한 개인의 불교가 아니다. 그 근본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부처님의 가르침이자 인간에게 들려주고자 설법하신 종교가 인간불교임을 알 수 있다. 인간불교는 세간世間 전체의 교화를 중시한다. 개인이든 단체든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대중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 불교 역시 시대적 흐름에 발맞추어 대중에게는 기쁨과 행복을, 국가와 사회에는 공헌을 해야 한다. 그래야 존재의 가치가 있고, 그렇지 않으면 사회에서 도태된다.
많은 콘텐츠를 보유한 불교에서는 문학, 예술, 음악 등이 모두 대중을 제도하는 인연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에는 이를 응용할 줄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그저 무상無常, 무아無我, 고苦, 공空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할 따름이었다. 당시는 인간적이고 건설적인 관념을 갖추지 못하였기에 불교가 융성하지 못했다.
지난 60여 년 동안 나는 ‘불법과 생활은 둘이 아닌 하나’라는 인간불교를 추진해 왔다. 그러나 인간불교는 불광산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며, 그 이념은 부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부처님은 인간세계에서 태어나고, 인간세계에서 수행했으며, 인간세계에서 성도했고, 인간세계에서 중생을 제도하셨다. 모든 것이 인간세계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그러므로 교주 그 자체가 ‘인간부처’이시고, 가르침 자체가 ‘인간불교’이다.
인간불교는 삶에 꼭 필요한 불교이다. 과거 산중에 머물고 세상을 등지는 방식을 중시한 일부 인사가 대중을 잘못 인도하였지만, 이제는 산중을 탈피해 사회로 나와야 하며, 사찰만의 불교가 아니라 가정으로까지 그 범위를 확대해 인간세계에 확실히 뿌리내려야 한다. 나아가 원만한 일상생활과 행복한 가정생활을 유지하고 정신과 마음, 그리고 인간관계가 조화롭게 만들어야 한다.
불광회원의 사구게四句偈인 “자비慈悲 희사喜捨의 마음 법계에 두루 퍼지고, 석복惜福 결연結緣으로 인간과 하늘을 이롭게 하며, 선정禪淨 계행戒行을 동등하게 견뎌내고, 참회.悔 감은感恩으로 큰 원심願心을 내게 하소서”가 곧 인간불교의 보살행이며, 인간을 근본으로 삼고 가정을 기초로 삼아, 큰 자비와 공평무사를 내어 중생을 제도하는 관세음보살처럼 평등성과 보편성으로 불법을 실생활에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 곧 인간불교이다.
인간불교는 생활 속 도덕 사상을 정화하고 정신과 마음으로 승화시키는 것을 중시한다. 인과因果 사상을 믿고, 더 나아가 생활 속에서 인과를 실천하면, 이 인과는 인간불교가 된다. 자비심을 믿고, 생활 속에서 자비심을 실천하면, 이 자비가 곧 인간불교가 된다.
삼귀三歸, 오계五戒, 육도六度, 십선十善 등이 모두 인간불교이다. 대중을 제도하는 불교가 인간불교이다. 서적출판, 학교 설립, 사찰 건립, 채식, 참선, 경전 설법, 거리 청소, 환경 보호, 행사 참여, 문화 교육, 의료 봉사, 양로원과 고아원 봉사, 계행戒行, 불법 강좌, 사찰 참배, 염불 수행, 불학 시험, 범패 합창, 군부대 홍법, 농촌 포교, 슬기로운 지혜, 계율 지킴의 생활화 및 연기緣起로 인한 자타 관계, 인과 순환의 진리, 업으로 인한 선악, 현세에서 해탈 성취, 공성空性으로 세계 포용, 자아의 원만진여 등이 모두 인간불교이다.
인간불교는 현묘한 문자보다는 현실을, 개인보다는 대중을, 산속보다는 도심을, 개인의 이로움보다는 타인의 이로움을 더 중시한다. 인생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방법이라면 모두 인간불교라 할 수 있다.
본문의 요지는 인간불교의 이론을 거창하게 늘어놓거나, 학술논문 같은 형식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과거 학자들은 불교의 이론을 이리저리 갖다 붙이고 옳으니 그르니 논쟁하며 사상을 갈라놓아, 불교가 사분오열되는 국면을 맞았다. 불교에서는 본래 ‘오직 일승법一乘法만 있고 이승二乘도 삼승三乘도 없다’고 했다.
진리는 말로 풀어서 밝히는 데 있지 않으며, 한결같은 신앙심이 가장 중요하다. 뜻도 모르고 경문을 읽어 요지와 이치를 깨우치기도 하지만, 쉽게 풀어 쓴 것을 보고도 말하는 바를 알지 못하기도 한다.
불교의 학술논문은 대중에게 믿음과 이해와 일이관지(一以寬之 하나의 이치로 모든 것을 꿰뚫다)하게 하여 의미와 이치에 전통하게 하는 데 중점을 두며, 불교에서 분별을 없애기 위해 항상 반야지혜를 강조한다. 그러나 과거 불교의 각 종파의 각종 의견이 서로 중복되거나 설명이 제각각 분분하였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