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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분을 잃지 않고 잘 살아가는 인생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서 ‘세상은 생각하는 인연으로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열반에 가까워진다.’ 했습니다.


“불자들이여, 모든 중생은 항상 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법을 뒤바꿔 보게 되어있으나, 생각하는 연고로 모든 법이 무상하고, 괴롭고, 내가 없고, 부정한 줄을 알게 되며, 이렇게 뒤바뀐 생각이 끊어지게 되나니, 이런 뜻으로 생각하는 인연으로 열반에 가까워진다 하느니라.”


여기에서 항상 한 것은 법신法身이요, 즐거운 것은 열반涅槃입니다.
참나는 부처이고, 깨끗한 것은 법이니 이것이 상락아정常樂我淨입니다.
그런데 전도된 그 생각으로 태어나는 모양, 늙는 모양, 병드는 모양, 죽는 모양에 휘둘려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범부중생凡夫衆生은 물론, 수다원須陀洹, 사다함斯陀含, 아나함阿那含, 아라한阿羅漢에 이르기까지 세상은 고통과 괴로움만 늘어나고 있습니다.
태어나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윤회하는 우리들의 인생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거두어 잘 생각하면, 비록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만나더라도 고통과 괴로움이 생기지 않는 본래 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사성제四聖諦, 팔정도八正道, 십이연기十二緣起, 육바라밀六波羅蜜 등, 삼십칠조도품三十七助道品의 가르침을 배우며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중 보시布施는 주는 것, 지계持戒는 지키는 것, 인욕忍辱은 참는 것, 정진精進은 진지하게 사는 것, 선정禪定은 흔들리지 않는 것, 지혜智慧는 밝히는 것,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며 실천 하는 신행 생활이 있습니다.


『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은 한 발 더 나아가고 있습니다.
보시는 물질적이든 법보시든, 보시는 번뇌를 버리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번뇌라 하는데, 그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번뇌를 버리는 것이 참보시행이라 하니 다소 생소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중생)의 현실은 견물생심見物生心입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감촉을 느끼며 생각으로 일어나는 것들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러다 오취온五取蘊인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으로 온갖 파장을 일으키며 어렵고 힘든 모습으로 전락해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보시는 주어도 준다는 생각 없이, 주었다는 생각도 없이, 받을 거라는 생각 없이 주는 것이 진정한 보시임을 알게 되면, 보시는 번뇌를 여의는 것, 번뇌를 버리는 것, 번뇌를 끊는 것,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보시행원입니다.
지계는 나타난 경계에서 별다른 생각이 없는 것이라 했습니다. 법대로 살며, 규범 속에서 살면 참 자유를 누릴 수 있을 뿐, 나타나는 경계를 별다른 생각 없이 내려놓으면 곧 계율을 지키며 사는 것이라 했습니다.
인욕은 참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을 다칠 게 없는 것, 상처받을 일이 없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일만 참으며 고통과 괴로움만 참고 불행한일만 참는 것이 아니라, 기쁘고 즐거운 것도, 행복한 일도 양날의 칼날과 같아서 한쪽은 참으며 한쪽은 그냥 넘어가는 것이 아닌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정진은 마음이 어느 경계에서 집착하는 것을 벗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흑백논리로 사는 것이 아니라, 진지한 삶의 현장이 정진인 것입니다.
경계해야 할 일은 생각이 집착하는 것을 받아들여 증상만增上慢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주위에서 ‘내가 부처다.’ ‘내가 깨달았다.’ ‘내가 재림하였다.’는 식의 말에 이런저런 일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 말에 현혹될 일이 아니라 내일 세상에 종말이 올지라도 오늘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는 새 희망을 가지며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선정은 집착에서 머물 마음이 없는 것, 치우치고 얽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지혜는 쓸데없는 논쟁을 하지 않는 것이라 했습니다.


만해卍海 스님의 “까마귀 검다 말고 해오라기 희다 말라. 검은들 모자라며 희다고 남을 소냐.” 하신 가르침도 경책의 표현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하나를 버릴 줄 알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게 됩니다. 나로부터 자유로워져야 나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물에 치우치거나 얽매이거나 지나치게 빠지게 되면 집착입니다.
“집착하면 본성本性인 영혼靈魂은 이 육신을 떠나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부처님 당시 일화가 있습니다. 2,600여 년 전, 히말라야 협곡의 강을 건너려면 소나 야크와 같은 큰 짐승의 마른 위장에 바람을 불어서 풍선처럼 튜브를 만들어 팔로 안고 강을 건너가야 합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강을 건너가려 하는데, 조금만 떼어달라고 합니다. 바람을 불어넣고 꽉 막아놓았는데 조금이라도 떼어주면 어떻게 될까요? 결국 바람이 빠져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줄 수 없다고 하니까, 애기 손톱만큼만 달라고 합니다. 그래, 인심이 야박해도 그렇지 그 정도야 못 주겠느냐 싶어 떼어주었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요? 
자기 입장에서 요구하며 살면, 서로는 그 강을 건너지 못한다는 비유입니다.


“선한 업을 지어 천상에 태어났더라도 윤회의 세계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한 모습일까요. 인간의 욕망은 무상한 것입니다.
항상 한 것은 법신, 즐거운 것은 열반, 참 나는 부처, 깨끗한 법이 상락아정입니다. 무상한 육신, 괴로운 번뇌, 자아는 무아, 부정한 것은 현상계입니다.
생로병사生老病死입니다. 깨끗한 내가 법이니 깨끗하지 않은 것은 현상입니다.
생멸生滅이 없고, 증감增減이 없고, 미추美醜가 없고, 대소大小가 없고, 장단長短이 없고, 동서東西가 없고, 남북南北이 없고, 전후前後가 없고, 좌우左右가 없는 것이 실다운 모양이요 참다운 모양입니다.
바로 모양 없는 모양입니다. ‘무상지상無相之相이 실상實相이요, 유상지상有相之相이 허상虛相‘인 것을 지혜로운 변별력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생멸이 있고, 증감이 있고, 미추가 있고, 대소가 있고, 장단이 있는 것은 현상입니다. 실다운 모양이 아니라 변화 되어지는 허상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금강경金剛經』에서는 “일체유위법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으니, 응당 이와 같이 관찰하라.” 하신 것입니다. 인생사가 물거품이며 그림자입니다. 이슬과 같고 번갯불같이 물질적인 것은 영원하지 않다는 가르침입니다.


공덕功德은 복福과 덕德과 지혜智慧입니다. 지혜 있는 이가 복을 짓고 나눔을 통해서 덕을 쌓으면 이것을 이름하여 공덕장功德藏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욕구와 욕심의 욕망은 그 공덕장을 파괴시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한 보살행菩薩行을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네 가지 지혜가 필요합니다. 무량무변한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는 지혜,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 세계로 들어가는 지혜, 무량무변한 중생의 세계로 드는 지혜로 불법바다에 들어가는 지혜입니다.


고래가 죽으면 육지로 떠내려가듯이 죽은 생명은 바다가 받아주지 않습니다. 불법의 바다도 그러해서 보리심菩提心이 없으면 불법바다에 죽은 목숨입니다. 죽은 목숨으로는 불법의 바다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부처님은 젊음과 건강과 목숨을 소중하다 하셨지만, 우리는 그게 언제까지냐고 반문해보면, 불안정한 세상입니다.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살아서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인과를 믿으며 세상을 잘사는 사람은 죽음을 겁낼 것이 없습니다.


인생은 본전치기만 해도 인간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림자 좇는 인생 살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가면, 행복은 그림자처럼 따라올 것입니다. 사홍서원四弘誓願을 세우고 육바라밀六波羅蜜을 닦으며 구경에는 성불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본분사本分事 지키며 잘 사는 불자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