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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일생

홍성범
숲해설가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의 대부분은 식물에게서 얻는다. 식물에게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음식 못지않게 중요한 호흡에 필요한 공기를 제공하는 사실은 가끔씩 간과하곤 한다. 식물이 없다면 이 지구에 산소가 있을 수 없으며 산소가 없다면 우리 인간은 생존할 수 없다.
태초의 지구, 현대과학이 묘사하는 모습의 지구, 산맥이 융기되지 않았고 그저 황량하고 평평하기만 했던 당시 지구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지구는 군데군데 얕은 바다가 있을 뿐, 거대하고 단조로운 풍경만이 펼쳐지는 삭막한 곳이었다. 생명체라고 부르는 것들은 생겨날 수 없을 정도로 지구의 환경은 가혹했다. 모든 에너지의 근원인 태양은 불덩어리처럼 타올랐으나 이 강력한 햇빛을 막아줄 보호막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생명 아닌 불모를 초래했다.
이런 상태는 15억 년, 태양계의 구성원으로 지구가 형성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3분의 1이 넘는 기간 동안 계속되었다가 어느 시점에선가 생명이라고 하는 불가사의한 현상이 지구에 생겨났다. 무생명에서 생명으로의 이행은 분자에서 세포로의 이행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지구를 둘러싼 이산화탄소의 양이 충분해지자 일부 세포에 내재되어 있는 엽록소가 자신의 고유한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태양열을 직접 저장해두었다가 이를 활용하여 산소를 배출해내는 탄소동화작용이 시작된 것이다.
광합성 작용 덕분에 창조의 모든 기적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광합성 작용으로 말미암아 무기물을 유기물로, 무생물을 생물로, 비활성물질을 생명체로 바꾸는 일이 가능하다. 엽록소는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었다.
수억 년 동안 진행된 진화의 정점에는 나무가 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나무는 모든 진화의 종착지인 인간에 비할 수 있을 것이다.
초기에는 나무 역시 다른 모든 식물들과 유사한 과정을 거쳐 성장하지만 점차 다른 식물들과 달리 긴 수명과 곧게 뻗어 올라가는 수직성, 큰 키와 부피감을 갖게 된다. 이는 다른 식물이 지닌 구조 위에 이를 보충하는 나무만의 독특한 구조가 덧붙은 것에 기인한다. 이 독특한 구조는 2차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부름켜라고 하는 성장대 속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부름켜는 1차적인 녹색 식물 주위에 원을 해마다 하나씩 생성하여 해를 거듭할수록 그 부피가 커지도록 기능한다. 그 덕분에 나무는 스스로 자급자족할 수 있으며 완벽한 조직으로 발전해 나간다. 일생 동안 계속 키가 자라고 지름이 두꺼워진다.
나무의 생장점은 어디일까. 나무의 골조는 나무의 중심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부에 있다. 나무의 딱딱함은 죽어서 뻣뻣해지고 굳어버린 조직에 의해 유지된다. 흔히 나무의 심장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이 죽은 조직이다. 나무는 둥지가 갈라지고 속이 비워지더라도 죽지 않고 생명을 유지하는데 이는 나무의 순환기능이 나무껍질 바로 안쪽 주변부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나무 조각을 작게 떼어내서 끈적끈적하게 진이 나오는 얇은 녹색 막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광합성 작용을 통해 잎사귀에서 만들어진 생명의 수액이 구멍 뚫린 관을 타고 뿌리까지 전달되는 곳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살아 숨 쉬는 부분이 상하면 잎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뿌리도 영양분을 얻지 못해 성장능력을 상실한다.
상승 수액은 관다발을 통해 나무의 가장 바깥쪽에 위치한 층, 거의 백색에 가까운 밝은 빛의 어린 나무 부분을 통과한다. 그 밝은 빛깔 때문에 이 어린 나무 부분을 백목질이라고도 부른다. 반면 나무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늙은 나무는 이제 생명력을 거의 상실한 채 타닌과 수지 성분의 침착으로 인해 짙은 빛깔을 띠게 되어 적목질이라고 부른다. 원료 그대로의 수액은 뿌리 끝에 무수히 돋아난 잔털들이 땅 속 깊은 곳에서 빨아들인 무기염을 포함한 물인데 이 수액은 잎의 호흡작용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공백을 메우기 위해 위쪽으로 빨아올려진다.
이처럼 나무의 순환작용은 껍질에 의해 보호되는데 이때 껍질의 바깥쪽부터 안쪽 방향으로 표피, 코르크, 코르크피층의 세 부분이 존재한다. 표피는 큐틴 막에 의해 보호되며 코르크는 죽은 조직이라 수분을 통과시키지는 않지만 껍질눈이라고 하는 미세한 상처를 통해 호흡 작용을 가능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코르크피층은 살아 있는 조직으로 부름켜에서 직접 형성된다. 껍질에는 독자적인 생장지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생장점은 줄기가 순환적으로 발달함에 따라 점차 안쪽으로 이동하며 이때 껍질은 계속 두꺼워진다.
껍질을 구성하는 전체 조직은 내부의 강한 압력을 받는데 이로 인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나이가 들수록 점차 금이 가거나 홈이 파이게 된다. 이는 인피와 나무 조직으로 이루어진 중심주가 성장함으로서 나타나는 결과이다. 인피와 나무 조직은 내부에 위치한 2차 부름켜에 의해 생성되며, 2차 부름켜는 나무의 거의 모든 조직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매우 활동적이다. 그러므로 나무줄기가 곧게 성장하는 것은 끊임없이 새로운 세포를 생산하는 생장점에서 만들어져 서로 맞물려 있는 두 개의 중심주에 기인한다.
나무는 외부세계와도 끊임없이 교류한다. 외부에서 양분을 취하고 섭취하고 남은 양분을 또다시 외부로 배출한다. 이는 줄기의 껍질눈이 지닌 두 가지 중요한 기능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잎의 안쪽 표면에 위치한 아주 작은 숨구멍의 역할이다.
태양이 정점으로 솟아오르고 봄기운이 만연하면 나무들도 오랜 겨울잠에서 깨어난다. 도처에서 겨울 동안 잔뜩 눌려왔던 새싹들이 움트고 잎이 피어나면서 새롭게 빛나는 햇빛을 흠뻑 빨아들인다. 땅 속에서는 수분들이 바쁘게 돌아다니기 시작하며 따뜻한 기운과 영양 많은 수분이 감돌기 시작하는 토양 속에서 뿌리털들은 열심히 펌프질을 한다. 머지않아 현자처럼 보이는 나무들도 호사스러운 향연에 매혹당한 것처럼 뿌리칠 수 없는 재생의 욕망에 꿈틀대기 시작한다. 그래서 다채로운 색깔로 몸을 치장하고 가능한 멀리까지 꽃가루와 꽃꿀의 향기를 뿜어서 수천 마리 곤충들을 자기 주위로 끌어 들인다.
한껏 물이 오른 나무의 절정기인 개화의 시기는 매우 짧다. 극심한 무더위와 가뭄의 여름과 함께 이제 쇠락의 징조를 보인다. 나뭇잎의 녹색은 초기에는 맑고 투명하다가 점점 짙어진 다음 불투명한 색조로 변한다. 마침내 점차 빛이 바랜다. 추운 가을 밤 동안에는 나무 내부에의 교류가 드물어지고 만들어진 당분은 폴산에 축적되어 점차 붉은 색소를 만들어간다. 엽록소는 점차 해체되어 노란빛을 띠게 된다. 단풍은 낙엽을 예고한다.
낙엽은 떨어지기 전에 가지에 붙어 있던 자리에 물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코르크질의 막을 형성한다. 그러므로 잎이 떨어짐으로써 생겨나는 상처는 아물고 그 위로 이듬해 봄에 피어나게 될 싹이 돋아날 것이다. 다시 순환하는 나무의 삶이다.
나무는 그 자신만으로도 하나의 세계를 구성한다. 일생동안 한 자리를 지키며 주변의 에너지를 바탕으로 영양분을 합성하여 자기 스스로 성장한다. 동물처럼 타 생명체에서 먹이를 구하지 않는 자급자족의 삶이다. 나무의 성장은 주변에 해를 끼치지 않고 오히려 도움을 준다. 수많은 동물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며 생산된 양분을 기꺼이 제공한다. 타자를 억압하고 그 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일생을 되새겨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