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운
텃밭농부
나의 올해 텃밭 농사는 흉작이다. 30그루를 심었던 고추는 절반이 죽었다. 그나마 살아남았던 것들도 크게 성장하지 못했고 과실을 많이 맺지 못했다. 고춧가루를 1.3kg을 얻었다. 우리 집 세 식구 먹을 김장할 때 쓸 정도에 그쳤다. 가지가 쳐지도록 열려야 할 가지와 토마토도 부실했다. 봄에 씨 뿌려 싹을 올린 더덕은 여름을 지나면서 모조리 자취를 감췄다. 감자는 씨도 얻지 못했다. 수박은 두세 덩이를 얻는 데 그쳤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흙을 일구면서 풍흉을 가름하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다. 농사에서 인간의 손길이 미치는 영향은 적다. 과실은 비와 바람과 햇살이 빚어내는 날씨가 내어주는 것인데, 여기에 대고 잘 됐느니 못 됐느니 따지는 것은 하늘이 하는 일을 내 좁은 소견으로 재단하는 어리석음이다. 그래도 기대했던 만큼에 이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니 중생심을 벗어나지 못한 나를 보게 된다.
9월 초에 심어놓은 배추는 이제야 경우 모종일 적의 크기에서 벗어나 잎을 펼치기 시작했다. 배추 모종이 자라는 적정기온은 하루의 평균 기온이 25도쯤 될 때이다. 하루 평균기온은 최고·최저 기온의 합을 2로 나눈 값이다. 추석 때까지의 낮 최고기온이 33도, 최저기온이 25도를 넘었다. 여기에다 새까만 톡톡이가 잎을 갉아먹으니 자라지 못했다. 배추 농사도 흉작이 예상된다. 어쩌겠는가, 하늘님이 하시는 일인데. 다만 나는 노심초사하며 땀을 흘릴 뿐이다.
시중의 배추 값이 훌쩍 뛰어올랐다. 한 포기에 만원을 넘는다. 그것도 크지 않고 통통하지도 않다. 유통구조의 문제도 있겠지만, 고온이 지속된 날씨 때문에 작황이 좋지 않은 이유가 작용했을 것이다. 배추를 배추라 하지 않고 금추라 불리는 사정이 이해된다. 주부들은 벌써 김장 걱정이다. 생산량이 줄어들고 그나마 부실한 배추를 비싸게 사서 김장을 할 생각에 미치니 깊은 한숨이 나오는 것이다. 양념값도 덩달아 오를 것은 뻔한 노릇이다.
기후변화는 음모론이 아닌데
기후변화를 몸으로 절절하게 느끼고 있다. 기후재난 또는 기후재앙이라는 표현이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이상기후는 이제 이상한 현상이 아니다. 날씨라는 것이 애초에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에 속하지만, 재난을 겪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기후변화를 아직도 음모론이나 주기적인 현상으로 여기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나아가 태양광, 풍력, 조력, 지열 등을 이용한 재생·청정에너지 생산체제로의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 석탄·석유·원자력에 의존하는 에너지 생산 떠받들고 있는데, 이는 과학적 사실에서 한참 벗어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떨쳐내야 할 구시대 체제에 머무르려는 수구적이고 파멸적인 태도이다.
세계기상기구와 국제연합 환경계획에 의해 설립된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에서 발행한 보고서에 기반한 것이다. IPCC는 지난해 3월 6차 보고서를 발행했다. 보고서는 세계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현 수준으로 유지하고 이후 배출량이 늘어난다면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이 2100년에는 2.8도(2.1∼3.4도)에 이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보고서는 철저한 과학연구의 결과를 반영하고 있는데, 내용은 두 문장으로 요약된다.
“(기후변화가) 인류의 안녕과 행성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이번 10년간 내려질 선택과 행동은 향후 수천 년에 걸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IPCC 6차 보고서 발표에 즈음한 기자회견에서 현재의 기후변화를 ‘기후 시한폭탄’이라면서 시급히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의 호소를 들어보자. 그의 호소가 간절하다. “석탄을 퇴출해야 한다” “지금 당장 초고속으로 기후행동에 나서야만 한다. 우리는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부분에서 그의 목소리는 단호하다.
“인류가 얇은 얼음 위에 서 있고, 그 얼음은 빠르게 녹고 있다. 우리의 세계는 모든 방면에서,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하는 기후 행동이 필요하다. 지난 200년간의 지구 온난화는 사실상 전부 인간에게 책임이 있다. 지난 반세기 간의 기온 상승은 2천 년 이내 최고이다. 기후 시한폭탄이 똑딱이고 있다. 오늘 IPCC 보고서는 이 시한폭탄을 해체하는 방법이 담긴 설명서이다. 이건 인류를 위한 생존 설명서이기도 하다. 1.5도 내로 제한하는 건 달성 가능한 목표이지만 여기에는 기후행동의 ‘양자도약’ 같은 변화가 필요하다. 모든 국가가 단합해 사회·경제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의 경우 2030년까지, 여타 국가들은 2040년까지 석탄을 퇴출해야 한다. 우리는 기후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을 그 어느 때보다도 잘 갖추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당장 초고속으로 기후행동에 나서야만 한다. 우리는 지체할 시간이 없다.” [SBS 뉴스 <인류는 얇은 얼음 위에 서 있다>, 2023. 3. 21.]
UN을 뛰어넘는 지구연합
자연 현상의 예측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어느 정도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대응은 시원치 않다. 인류는 여전히 이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 기후변화와 생물종의 멸종 원인은 인간에 의한 자연수탈 때문이라는 것은 명명백백하다. 이대로 가다가는 파국이라는 결말을 맞이할 것이라는 예측은 현실이 되고 있다.
다행히 해법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를 이행하지 않는 인류의 이기주의다. 자국 중심의 생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으니, 지혜가 빼어난들 꿰지 못한 보배나 다름없다. 기후 문제는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만큼 나라들이 지혜와 의지를 모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UN을 뛰어넘는 수준의 지구연합을 주창한다. 미국의 정치학자 다니엘 듀드니는 주요 환경문제의 출현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국가 중심의 시스템으로는 불가능하다면서 ‘테라폴리턴(terrapolitan) 주권’을 주장하면서 행성적 규모의 새로운 거버넌스를 제안했다. 지구촌의 정치적 연합의 중심적 기반은 ‘테라(terra 라틴어로 땅·지구)’이어야 하며, 지구촌의 새로운 구성에 적합한 정치적 연합은 ‘지구에 적합한 테라폴리턴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견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에드가 모랭은 지구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구 중심적 관점에서 지구시민과 지구연방을 구축’할 것을 주장했다. 지구라는 행성은 모든 인간 존재들의 ‘공동의 집’ ‘모태’ ‘조국’이기 때문에 지구운명공동체를 이루게 된다고 보고 있다. 지구시민권, 지구시민의식, 지구정치여론, 지구정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그는 종교의 지구적 확장에도 관심을 기울였는데, 지구종교 혹은 행성종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가 종교에 주목한 이유는 종교가 인간존재와 국가를 연결하고 일치시키는 힘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지구연합을 제창한 사람들이 서구문화권에 속하지만, 발상의 바탕은 동서양을 막론한 지혜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일찍이 동아시아에서는 정신문화를 이끌었던 불교와 유교가 모두 인간과 자연과 둘이 아니라는 이치를 펼쳤고, 이런 가운데 문명과 문화를 이루었다. 근래에 이르러 해월 최시형은 ‘천지는 부모요, 부모는 곧 천지’라는 ‘천지즉부모론天地卽父母論’을 내놓았다. 영국의 제임스 러브룩이 가이아론을 펼치기 한참 전이었다. 지구연합에 대해 지금의 국가 간 이기주의 하에서는 뜬구름 잡는 얘기로 치부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발상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결과는 뻔하다. 인류 전체의 파국이다. 세상은 때때로 불가능 속에서 희망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