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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한 마음으로 정진하는 불자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출가한지 60년, 통도사에 올 때가 68년도이니, 벌써 57년이 흘렀습니다. 어른 스님의 뜻을 받들어 서울 구룡사 주지 소임을 맡은 지는 올해로 40년이 되었습니다.
선재동자가 보리수 아래를 떠나지 않았던 것처럼, 저 역시 그동안 통도사를 떠나본 적은 없습니다. 지금은 국내외에 세운 도량이 20여 곳이 넘습니다.
구룡사 유치원과 어린이집만 해도 교사들이 200여 명에, 원아들이 1,500명이 넘습니다. 또 인터넷 붓다TV 방송은 접속자가 1억 2천만 명을 넘었습니다.
84년도 종단의 소임을 맡고 있을 때, 만해 한용운 스님의 『님의 침묵』 연극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아, 이런 방법으로 불법을 전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연극인들과 함께 극단을 세웠습니다. 그 극단이 바로 ‘신시컴퍼니’입니다. 극단의 이름은 생소할지 모르지만, 극단 신시의 작품을 보신 분들은 많이 계실 것입니다. 지금도 서울 마곡지구l에서 뮤지컬 「맘마미아」가 공연되고 있는데, 이 작품도 87년에 세운 신시컴퍼니가 20년 넘게 무대에 올리는 작품입니다. 「시카고」, 「아이다」, 「렌트」, 「겜블러」, 「고스트」, 「원스」 같은 작품들도 전국 투어를 했고, 얼마 전 국립극장에서 막을 내린 「렛미인」도 공연했습니다.
이런 이유는, 84년도에 미국에 가려는 말씀을 월하 노스님과 벽안 노스님께서 듣고, 노스님께서는 “정우가 미국을 간다고? 다시 못 볼 수도 있겠구나.~~~” 당시 제 나이가 서른세 살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청년의 나이 이었습니다. 어른 스님의 걱정은 지금도 제 가슴 속에 깊이 살아남아 있습니다.
어제는 90년도에 터를 잡아 2000년도에 낙성한 일산 여래사에서 초하루 법회를 하고 왔습니다. 그리고 구룡사에서는 BTN 불교TV 방송의 녹화를 했는데, 청년 불자들을 위한 인연 맺기 프로그램이었습니다. 1박 2일 동안 진행되는 프로그램에 백여 명이 신청했고, 그 가운데 스무 명을 선정하여 전법회관에서 좋은 인연이 맺어지도록 함께하였습니다.
돌이켜 보면, 76년 통도사에 월하, 벽안 노스님 곁에서 말씀도 드리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 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 월하 노스님께서는 제가 살고 있는 작은 암자를 두 번이나 찾아주셨습니다. 당시 동국대학교 재단 이사장님으로 계실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해 10월 12일, 76세이셨던 벽안 노스님께서는 스물다섯 살이던 정우에게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정우를 보내고 궁금하던 차 편지를 받아보고 반겨하였다.
공부를 위한 것이니 아무쪼록 공부를 착실히 하고 돌아와서 통도를 위하고 불교를 위해서 크게 활약하고 훌륭한 승려가 되어라. 우리 불교는 현재 이 사회에 바램을 응수하지 못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반성해서 구습을 타파하여라.
76년 10월 12일. 노승 벽안 답서.”


젊은 청년에게 보내주신 이 가르침을 지금도 가슴에 깊이 새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IMF 시절, 구룡사에서 일산 여래사 불사를 추진하던 중에 9대 종정 이셨던 월하 노스님께서 써주신 한 구절의 글이 있습니다.
“진리무상미언설眞理無相未言說이요,
일체만물무비통一切萬物無非通이니라.”
곧, 진리는 언어 이전의 소식이며, 모든 만물은 서로 통하지 않음이 없도다.
이 가르침은 제 수행과 삶의 터전에 큰 지침서가 되었습니다.


몇 해 전부터 날마다 걷기를 하고 있습니다. 적게는 8km, 많게는 15km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걷습니다. 이는 출가자로서 인과因果와 윤회輪廻를 믿는 마음, 다른 이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시작된 실천입니다. 이렇게 걷는 길에 가득했던 매미 소리 대신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자연은 속일 수 없다는 이치처럼, 계절의 흐름은 그대로 우리에게 일깨웁니다. 매미가 일주일 삶을 위해 7년을 땅속에서 기다리고 있듯, 우리 인생 또한 보이지 않는 짧은 시간 너머 깊은 인연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에는 여러 비유가 있습니다.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의 성실하지 못한 삶도 있고, 밤마다 내일은 반듯이 집을 짓겠다고 다짐 하다 결국 집을 짓지 못하는 야명조소夜鳴鳥巢라는 새도 있습니다.
우리 인생 또한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으며, 오직 찰나刹那의 현재만이 있을 뿐입니다. 순간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집니다.


지구는 시속 1,600km가 넘는 자전의 속도로 끊임없이 돌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변화 속에서도 이렇게 앉아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잡아함경雜阿含經』에 “자기 자신을 맡겨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결국 지금 이 순간, 자기 자신을 바로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가르침입니다.
우리의 삶도 때로는 박쥐처럼 거꾸로 매달려 있는 듯 위태로울 때도 있습니다. 법을 의지하여, 자기 마음을 단단히 지키면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여름 더위와 태풍, 인간의 끝없는 욕심이 불러온 환경문제…. 이 모든 것이 사실은 우리 마음자리에서 비롯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누에가 고치 속에서 실을 뽑듯, 우리 또한 스스로 만든 업 속에 갇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그 속을 뚫고 나와 날아오를 수도 있습니다.
한 도량이 세워지면 그 안에서 곧 극락정토極樂淨土가 이루어집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모여 부처님 전에 기도하고 법을 들은 이 순간이 바로 극락정토의 시작입니다. 진정한 불자는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욕심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나를 바르게 세우고 이웃을 이롭게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인연이 불자 여러분의 마음에 깊은 울림이 되어, 각자의 삶을 지혜와 자비로 이끌어 가시기를 염원합니다.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먼저 나쁜 업을 멀리해야 합니다. 옛말에 “삼일 닦은 마음은 천 년의 보배요, 백년 탐심은 하루아침의 티끌과 같다(三日修心千載寶 百年貪物一朝塵)”고 했습니다. 순간의 탐욕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사라지지만, 잠시라도 마음을 바르게 닦은 공덕은 영원히 남습니다.
나쁜 행동을 멀리하고 선행善行을 쌓으며, 보리심菩提心을 놓지 않는다면 그것이 곧 자비심慈悲心이요 연민심憐愍心이며, 선행善行이 될 것입니다.
그 마음을 지닌 이는 늘 편안할 것입니다. 단순한 편안便安이 아니라 ‘평안平安’입니다. 몸과 마음이 고요히 쉬는 그 상태가 바로 평안입니다. 편지를 쓸 때 “평안 하시지요?”라고 문안을 적었던 것도 결국은 “마음이 편하십니까?”라는 뜻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이는 마땅히 자신을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무조건 막무가내로 지키라는 것이 아닙니다. 마땅히 자기 할 도리, 근본을 잊지 않고 자기의 도리를 다하다 보면 자연스레 자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선지식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진지하게’ 살아야 합니다. 갈팡질팡하거나 우왕좌왕하지 말고, 수행자의 삶이란 바로 진지한 삶의 현장에서 흔들림 없이 정진精進해 가는 것입니다. 정진하기에 알맞은 다섯 시기가 있습니다.
첫째, 머리카락이 칠흑같이 검고 청춘의 기운이 가득한 젊은 시절입니다.
둘째, 건강하여 질병이 없고, 무엇이든 잘 소화할 만큼 왕성한 체력을 지녔을 때입니다.
셋째, 풍년이 들어 먹을 것이 넉넉하여 굶주림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을 때입니다.
넷째, 사람들이 서로 우유와 물처럼 잘 어울려 사랑과 연민의 눈빛으로 교류할 때입니다.
다섯째, 승가가 화합하여 다투지 않고, 서로 감사하며 살아감으로 믿음 없는 이는 믿음을 얻고, 믿음을 지닌 이는 그 믿음이 더욱 깊어질 때입니다.
바로 수행하고 공부하기에 가장 알맞은 시기입니다.
뒤돌아보면, 제 삶도 참으로 찰나지간과 같았습니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통도사 주지 소임을 본 것도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구의 나이가 45억 년이라 하고,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지도 2600년이 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살아온 세월을 떠올리면 한순간에 불과합니다.
열일곱 살 먹던 해, 용산역에서 물금역까지 190원 주고 완행열차 타고 통도사로 갔습니다. 그때 한 스님께서 주신 500원으로 길을 떠났는데, 지금 돌아다보면 그 돈이 제 평생의 인연이 되어 오늘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물질을 얼마나 모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쓰지 않으면 가진 것이나 다름없고, 나누면 함께하는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욕구慾求와 욕망欲望을 전혀 버릴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중생衆生이 욕심慾心을 버리기는 집에서 기르던 개를 버리기보다 어렵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를 내보내도 돌아오듯, 탐심貪心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연민심을 지니고 살기는 놀란 들 사슴을 가슴에 품고 있는 것보다 어렵다.
인색하고 옹색한 마음은 마른 완두콩을 송곳으로 찌르는 것보다 어렵다.”


얼마 전 BTN 방송에서 방장 스님과 젊은 스님들이 대담을 나누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 스님이 “제가 AI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참선參禪이 먼저입니까, 계율戒律 공부가 먼저입니까?” 하고 질문을 했습니다. 이에 방장 스님께서는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선禪과 율律은 두 볼과 같다. 왼쪽 뺨, 오른쪽 뺨이 모두 얼굴인 것처럼, 참선과 계율은 본래 둘이 아니다.”
얼굴이 어느 한쪽만으로는 온전할 수 없듯이, 선과 율 또한 함께 갖추어져야 불교의 참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또 다른 질문은 “오늘날 불교는 진정으로 등불을 밝히고 있습니까?” 이에 방장 스님께서는 “불교의 등불은 늘 꺼지지 않는다. 다만 낮에는 별과 달이 보이지 않고, 밤에는 해가 보이지 않을 뿐이다. 등불은 본래 항상 타오르고 있다.” 하셨습니다. 참으로 깊은 깨달음의 가르침이라 생각합니다. 이렇듯 우리 삶은 덧없이 흘러갑니다. 그렇기에 있을 때, 살아 있을 때, 어른 스님들을 자주 청해 법문을 듣고, 가르침을 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백중은 거꾸로 매달린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한 자비의 법회입니다. 목련존자가 지옥에 빠진 어머니를 구제하기 위해 대중에게 공양을 올린 것이 그 시초라 전해집니다. 우리는 49재와 생전예수재로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전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은 이러했습니다.
“내가 떠남을 보고 그것을 죽음으로 알지 말라. 열반은 죽음이 아니니라.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이 몸의 본래 모습이다. 그러나 깨달음의 지혜는 영원히 살아 있다. 모든 것은 무상하나니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불자에게 불법佛法은 생활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관세음보살님과 지장보살님을 염송하는 것도 단지 입으로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 대비심大悲心과 대원행大願行을 본받고자 하는 발원입니다. 입안에만 머무는 염불은 참된 기도가 될 수 없습니다. 몸과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할 때 그 시간이 소중한 수행이 됩니다. 늘 진지하게, 그리고 평안한 마음으로 정진해 가기를 염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