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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약한 자를 보석과 같이 여기는 마음

달라이라마의 칼라차크라 광장 법회 법문


달라이라마
티베트 승왕



두 손 모아 삼보 전에 귀의합니다.
저의 모든 잘못을 참회합니다.
모든 중생의 공덕을 기뻐합니다.
붓다의 경지를 마음에 새깁니다.


깨달음을 이루고자 귀의합니다.
붓다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제자와 함께
공동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깨달음의 마음을 개발하고 증장시키겠습니다.


최상의 깨달음을 향한 서원을 갈고 닦아
모든 중생을 나의 손님으로 초대하겠습니다.
환희심으로 충만한 깨달음 수행을 하겠습니다.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는 붓다에 이르기를 서원합니다.


인도 라다크 레 세왓셀포당 칼라차크라 광장은 5만여 사부대중이 운집해 있었다. 붉은 승복의 연단은 이른 아침부터 열띤 대론의 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달라이라마(뗀진갸초, 90)는 사자좌에 오르며 반야심경을 봉독하고, “이 모든 공덕이 일체 생명 지닌 중생을 이롭게 하여 붓다가 되는 단비가 되기를 염원한다.”라는 축원을 전했다. 8월 16일 칼라차크라 광장에서 열린 법회는, ‘마음 수련에 관한 여덟 구절과 네 가지 마음 챙김’을 주제로 진행되었다.


“일상에서 깨어있는 나로 여실히 살아요.”


고국 티베트를 잃고 인도로 망명길에 오르던 때를 회상해 봅니다. 다람살라에 수립된 망명정부는 히말라야 지역으로 몸은 비록 떨어졌으나 마음만은 티베트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큰 위안을 해주었습니다. 예로부터 티베트는 관세음보살과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고 들어왔습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노블링카 궁을 떠나 키추 강을 건너 계곡을 지나 머나먼 망명의 여정을 겪었습니다. 당시 떠나는 것이 슬프긴 했지만, 우리 모두는 인간으로서 똑같은 존재라는 진리를 마음에 심지로 삼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외 없이 행복하기를 원하고 고통 받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설령 망명하게 되더라도 다른 사람들과 가르침을 나눌 수 있다고 희망했습니다. 히말라야 지역 어디를 가든 독실하며 영적 수행에 헌신하는 불교도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티베트인들은 큰 어려움에 직면했고 중국의 규제는 더욱 엄격해졌지만, 티베트에서 이어지는 히말라야 사람들은 우리의 친구였습니다.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받고 보리심과 바른 견해를 수행하는 비구 승려로서, 저는 깨달음의 마음과 공에 대한 통찰을 수학하였습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수행의 방법입니다. 제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 모두가 수행을 통해 보리심의 깨달음과 공에 대한 견해를 끊임없이 상기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이러한 원칙에 따라 명상합니다.
티베트어로 깨달음을 의미하는 ‘장춥’은 두 음절로 이루어져 있는데, ‘장’은 모든 결점과 단점을 극복하는 것을 의미하며, ‘춥’은 얻을 수 있는 모든 훌륭한 자질로 충만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종교적 수행을 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모두가 행복하기를 원하며 그 누구도 고통 받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통상적으로 고통의 근원은 두 가지를 꼽습니다. 자기중심적이고 자기애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과 사물에 대하여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깨어 있는 마음, 즉 깨달음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키고, 찬드라키르티의 ‘입중론’에서 발췌한 구절을 묵상하며 공성의 도리에 대해 명상하는 일상을 추천합니다. 이 두 가지 원리, 즉 깨어 있는 마음과 공은 붓다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이곳 인도는 티베트인의 망명지입니다. 인도 정부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며, 이곳에 사는 우리 모두가 이곳에서 누리는 자유에 기뻐해야 합니다. 또한 다른 중생을 돕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함으로써 우리 삶을 의미 있게 만들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인도는 다양한 종교적 전통이 번성하는 땅이며, 조화와 협력의 상징적인 나라입니다. 종교 수행의 핵심은 친절하고 비폭력적이며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제가 달라이라마에 옹립된 이후 선지식의 가르침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은 인연의 화합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물은 특정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제 삶을 의미 있게 살아왔다고 스스로 자부합니다. 여러분께서도 따뜻한 마음을 갖고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의 중요성을 명심하십시오.
심훈팔계의 4번째 구절, ‘악한 마음과 악행, 고통에 짓눌린 사람들을 볼 때, 마치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그들을 귀한 존재로 소중히 여기게 하소서.’라고 하는, 게셰 랑리 탕파의 격언은 비록 악한 마음을 가진 존재일지라도 그들이 고통 받는 모습을 볼 때 그들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을 일깨웁니다.
누군가가 시기심으로 나를 모욕하는 등의 행위로 나에게 해를 끼칠 때, 나는 패배를 받아들이고 그에게 승리를 바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내가 도왔고 희망을 걸었던 사람이 나에게 해를 끼쳐 큰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그들을 훌륭한 영적 친구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비판할 때, 그들에게 화를 내는 대신 그들의 비판이 타당한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먼저 당신에게 그러한 잘못이 있는지 없는지 살펴보십시오. 만약 있다면, 그들이 지적해 준 것에 감사하십시오. 그들의 비판을 영적 가르침처럼 여겨 나 자신을 살펴보십시오.
이어서 네 가지 무념無念을 보석과 같이 여기기를 바랍니다. 스승에 대한 마음챙김, 최상의 깨달음을 향한 이타적 서원에 대한 마음챙김, 신성한 몸으로서의 몸에 대한 마음챙김, 그리고 공성에 대한 견해에 대한 마음챙김이 그것입니다. 욕망과 증오를 버리고, 사랑과 자비를 명상하며, 마음이 방황하지 않도록 항시 자비 안에 두십시오. 공의 관점에서 마음챙김에 임할 때는, 사물이 우리에게는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존재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고 명심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