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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수행 방법 중 가장 근본이 되는 믿음

신규탁(연세대 명예교수, 철학 전공)


 


1.
지난달에는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많은 ‘선택’을 하게 되는데, 그 선택에는 ‘기준’이 있게 마련이고, 그 기준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소위 ‘으뜸 가르침’ 즉 종교宗敎로 작동될 수 있음을 말하였다. 󰡔범망경󰡕 <상권>에는 대승의 불자가 지켜야 할 ‘으뜸 가르침’을 네 범주로 나누어 그 행동 강령을 제시하고 있다.
그 행동 강령을 소개하기에 앞서 먼저 대승불교의 생명관을 확인해 두어야겠다. 대승불교에서는 인생을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세상만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이 점은 석가모니 부처님 이래 불교의 오래된 전통이다. 긴 생명의 여정은 ‘깨달음’ 내지는 ‘번뇌로부터의 해탈’이라는 방향성을 가지고 이어진다. 깨달음으로 향해 나아가는 삶이 참된 삶이라고 불교에서는 말하고 있다.
󰡔범망경󰡕 <상권>에서 그런 긴 수행 길에서 지켜야 할 덕목을 네 범주로 요약해서 제시하고 있다. ⑴첫째는 발심 단계에서 실천해야 할 덕목을 제시하고, ⑵둘째는 발심 후 꾸준히 기르고 가꾸어야 하는 수행 덕목을 제시하고, ⑶셋째는 어떤 경우라도 다이아몬드처럼 굳건하게 실천해야 할 덕목을 제시하고, ⑷넷째는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경지를 제시하고 있다. 한자 원문으로, ⑴을 발취심發趣心이라 했고, ⑵를 장양심長養心이라 했고, ⑶을 금강심金剛心이라 했고, ⑷를 십지十地라 했다.


2.
지난 9월에는 금강심金剛心의 열 가지 덕목을 나열하여 소개했다. 즉, ①믿는 마음인 신심信心, ②염원하는 마음인 염심念心, ③회향하는 마음인 회향심廻向心, ④공한 줄을 아는 마음인 달조심達照心, ⑤정직한 마음인 직심直心, ⑥물러서지 않는 마음인 불퇴심不退心, ⑦대승의 마음인 대승심大乘心, ⑧티 없는 마음인 무상심無相心, ⑨지혜로운 마음인 혜심慧心, ⑩ 번뇌에 부서지지 않는 불괴심佛壞心, 이렇게 한자 제목과 그 제목 한글 번역만 소개했다.
10월부터는 각론으로 들어가 ①믿는 마음인 신심信心부터 차례로 살펴보기로 한다. 󰡔범망경󰡕 <상권> 본문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불자여, ‘믿는 마음[信心]’이란, 모든 수행에 있어 믿음이 으뜸이며 온갖 덕의 근본이다. (이런 믿음이 있어서) 외도들이나 내는 사견邪見 마음을 내지 않는다. 사견私見을 이름하여 집착이라고 한다. (믿는 마음이 있으면) 윤회에 들 생명으로 태어나 업을 짓는 과보를 끝내 받지 않으며, 공空하여 무위無爲인 진리 속으로 들어간다. 세 가지 속성[相]이 없으니, 생하는 것도 없고 생겨나는 것도 없으며, 머무는 것도 없으며, 소멸할 것도 없다. 나아가 모든 법이 공하다는 것도 세제世諦와 진제眞諦도 없다. 모두 다 없더라도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색・수・상・행・식도 공하고, 섬세한 마음도 공하다. 섬세한 마음의 마음도 공하기 때문에, 믿는다는 티도 전혀 없다. 본바탕의 본성이 없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니, 역시 어디에도 의지 하지 않는다. 그렇기는 하지만 삶의 주인공 또는 나, 또는 남 등의 이름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의 3계 속에서 인연으로 머무는 ‘나[我]’를 영원한 ‘나[我]’라고 하지만, 그러나 이런 ‘나[我]’는 인연으로 모인 속성[集相]이란 없는 것이므로 속성이 없는 믿음이라고 한다.


본문에 나오는 신심信心에 대한 유명한 구절이 80권본 󰡔화엄경󰡕 「현수품 제12」에 나온다. 총 39품으로 번역된 󰡔화엄경󰡕에서는 믿음[信]을 주제로 설하는 대목이 모두 3품品이 배열되어 있다. 「보살문명품 제10」, 「정행품 제11」, 「현수품 제12」가 그것이다. 그중에서 「현수품 제12」에서는 믿음으로 인해 생기는 공덕의 작용을 낱낱이 거두어 밝히고 있다. 그래서 예부터 경학의 훈고에는 「현수품 제12」를 <덕용해수德用該收>라고 과목을 붙였다.
「현수품 제12」에 문수의 청에 의해 현수보살이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화답하고 있다.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운허 스님의 <한글대장경> 번역도 함께 소개한다.


신위도원공덕모信爲道元功德母
신심은 도의 근본 공덕의 어미


장양일체제선법長養一切諸善法
일체 선한 법을 길러내 오며


단제의망출애류斷除疑網出愛流
의심의 그물 끊고 애정 벗어나


개시열반무상도開示涅槃無上道
열반의 위 없는 도 열어 보이네


3.
열반의 길로 향하는 인생길에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면 믿는다 하면, 무엇을 믿는다는 것인가? 그것은 깨친 부처님과, 그런 부처님의 말씀과, 그런 부처님을 모시고 깨침을 향해 수행하는 공동체를 믿으라는 것이다. 󰡔화엄경󰡕에서는 「여래명호품 제7」에서 부처님을 몸[身]의 측면에서 드러내 보이고, 「사성제품 제8」에서 부처님을 말씀[口] 측면에서 드러내 보이고, 「광명각품 제9」에서 부처님을 뜻[意] 측면에서 드러낸다.
자, 믿음에 대한 대승불교의 일반적 설명은 이 정도로 마치고, 󰡔범망경󰡕의 열 가지 금강심金剛心 중에서 첫째에 해당하는 신심信心은 어떤 믿음을 말하는가? 이 점에 주목하면서 위에서 인용한 본문을 분석해 보기로 한다. 둘째 줄에서 “외도들이나 내는 사견邪見 마음을 내지 않는다”라는 말뜻을 좀더 설명해 보기로 한다. 좀 복잡할 수 있지만, 원체 중요하니 자세하게 설명하려고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사악한 견해로 크게 다섯 가지를 꼽고 있다. ①첫째는 신견(身見, satkaya-dṛṣti)이다. 유신견有身見으로도 번역하는데, 상주불변하는 실체인 자아 또는 영혼이 있다고 믿는 견해이다. ②둘째는 변견(邊見, antagrāha-dṛṣti)인데, 이는 치우친 견해라는 뜻으로 상견常見과 단견斷見의 극단적인 생각을 말한다. 죽으면 끝이라느니, 아니면 영생한다느니 하는 생각들을 말한다. ③셋째는 사견(私見, mithyā-dṛṣti)으로 인과율을 부정하는 견해이다. ④넷째는 견취견(見取見, dṛṣti-parāmarśa)으로 잘못된 형이상학적 견해를 참이라고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⑤다섯째는 계금취견(戒禁取見, śila-vrata-parāmarśa)인데, 외도의 계나 사상을 옳다고 집착하는 견해이다. 여기에는 크게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잘못된 원인을 바른 원인이라 고집하는 <비인계인非因計因>이다. 예를 들면 고대 중국의 경우 태허太虛나 자연自然이나 혼돈일기混沌一氣가 우주와 인생의 근본이라고 보는 견해가 여기에 속한다. 또 하나는 열반으로 인도하는 방법이 아닌데도 그것을 바른 방법이라고 믿는 잘못된 생각인 <비도계도非道計道>이다.
이상과 같은 ‘삿된 믿음’이 아닌 제대로 된 믿음을 내라는 것이다. 특히 󰡔범망경󰡕의 이곳에서는 ‘티 없는 믿음’을 강조하고 있다. 본문에서 “공空하여 무위無爲인 진리 속으로 들어간다”라는 말도 그런 일체개공一切皆空의 반야 지혜를 강조하는 표현이다. 아무것도 없는 공무空無 내지는 허무虛無가 아니다. 그런 뜻을 본문에서는 “모두 다 없더라도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역시 “믿는다는 티도 전혀 없다”라는 표현도 그런 뜻에서 읽어야 한다. 원문 한문의 “信信寂滅신신적멸”을 필자는 위와 같이 번역한 것이다. 본문의 한문에서 “色空색공, 細心心空세심심공, 細心心心空세심심심공”이라고 하여, ‘공空’이라는 글자를 붙여 점층적으로 실체가 없음을 거듭 강조하는 표현도 그렇다.
불교가 수행의 종교라는 점에는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수행 방법으로 대표적인 방법으로 초기불교 이래 8정도八正道는 중요하다. 대승불교도 역시 이런 전통을 계승하면서, 특히 화엄 계통의 경전에서는 믿음을 수행 방법의 중요한 첫발로 제시하게 되었다. 반야부의 영향 속에서 이런 믿음도 티 없는 믿음으로 강조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