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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불교는 수행의 종교이다

신규탁(연세대 명예교수, 철학 전공)



1.


불교는 그 어느 사상이나 종교보다도 자신의 실천을 중요하게 여긴다. 개개인의 노력 그리고, 개인이 모여 이룬 공동체의 노력으로 세상이 움직인다고 보았다. 그렇게 노력하여 만들어가는 것을 ‘업(業, Karma)’이라고 한다. 내가 행한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행위는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씨앗(種子)처럼 내면에 잠재력으로 남아 있다가, 적절한 조건이 갖추어지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결과(報)를 낳는다는 연기적 발상이다. 일종의 인과론적 해석이다. 지금 세상에서 생각하면 당연하지만, 과학이 발전하지 못했던 고대에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발상이다. 이에 비해, 고대 중국에서는 ‘천명天命’을 거론하여 세상을 움직이는 근원적인 그 무엇을 상정했다. 그런가 하면 고대 인도인들은 모든 존재의 뿌리이며 존재를 지탱하는 궁극의 실재로서의 ‘브라만Brahman’이 인생을 관장한다고 생각했다. 한편, 성경에서는 인간의 삶에 개입하는 구원자이자 인격을 가진 존재로 ‘여호와Yahweh’를 거론하고 있다.


2.


인간의 실천에 주목한 불교는 수행에 따른 효과를 여러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기에 이르렀다. ‘업業’에 의한 인과응보로서의 ‘보報’를 자세하게 규명한 것이다. 대승불교 시대에 들어서는 그러한 수행의 결과로서의 ‘보’를 ‘10가지 지위’로 조직화했다.
화엄에서 말하는 ‘10지十地’ 관련 학설도 그중 하나이다. 수행이라는 행위가 원인이 되어서, 그 결과로 나타나는 공덕이나 지혜를 열 단계로 나누어 정돈한 것이다. 이때의 ‘지地’는 산스크리트어 ‘부미bhūmi’를 번역한 것으로, 본래 대지 또는 땅, 혹은 기반을 뜻한다. 초목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듯이, 보살이 각 단계의 지위에서 공덕과 지혜를 굳건히 다지고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발상의 근본에는 인간 노력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다.
화엄에서 말하는 ‘10지’는 ①환희지歡喜地, ②이구지離垢地, ③발광지發光地, ④염혜지焰慧地, ⑤난승지難勝地, ⑥현전지現前地, ⑦원행지遠行地, ⑧부동지不動地, ⑨선혜지善慧地, ⑩법운지法雲地이다. 수행이라는 노력의 결과로 이상과 같은 단계별 공덕과 지혜가 생긴다는 발상이다. 이러한 대승의 지위설에 영향을 받아 󰡔범망경󰡕의 ‘10지’ 학설도 성립하였다. 이 방면의 학승들은 화엄의 10지설을 활용하여 󰡔범망경󰡕의 ‘10지’를 해석하기도 했다.
󰡔범망경󰡕의 10지란 ①체성평등지體性平等地, ②체성선혜지體性善慧地, ③체성광명지體性光明地, ④체성이염지體性離染地, ⑤체성혜조지體性慧照地, ⑥체성화광지體性華光地, ⑦체성만족지體性滿足地, ⑧체성불후지體性不朽地, ⑨체성화엄지體性華嚴地, ⑩체성입불계지體性入佛界地이다. 열 가지 ‘지地’의 명칭 앞에 ‘체성體性’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하나의 온전한 불성佛性이 수행에 따라 이렇게 단계별로 드러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3.


필자가 위에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나 거론하는 ‘10지’ 관련 학설을 언급하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불교는 인간의 노력을 강조하는 종교이자 철학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하기 위함이다. 고대인들은 동서를 막론하고, 그들의 문화 속에 나타난 인간의 모습을 불완전하고 결핍된 존재로 여겼다. 이러한 인간 이해를 바탕으로 완전하고 결핍이 없는 절대적 존재를 상정했다. 문화에 따라 그 절대적 존재를 위에서 보았듯이 ‘천天’, ‘브라만Brahman’, ‘여호와Yahweh’ 등 이름은 달리 붙였지만, 그 발상은 유사하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현실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때로는 번뇌에 휘말릴지라도 인간의 근원적 참모습은 온전하다고 보아 왔다. 인간의 근원적 참모습을 불교 철학에서는 ‘진여(眞如, tathatā)’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즉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뜻한다. 다만 그러한 진여를 본질로 하는 인간이 번뇌로 인해서 그 진여가 제대로 현실에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인위적인 노력으로 번뇌가 작용하지 못하게 하면, 그러는 만큼 진여의 작용이 활성화된다는 발상이다. 그 활성화된 단계를 󰡔범망경󰡕에서는 ‘10지’로 단계별로 구성한 것이다.
인간이 수행을 통해 번뇌를 끊어감에 따라 그에 따른 체험도 늘어난다고 한다. 이를 화엄의 법성교학에서는 단증설斷證說이라 하는데, 당대의 화엄 학승들은 그 기본 골격을 󰡔성유식론󰡕에서 차용하고 있다. 당나라 현장 법사가 659년에 번역을 마친 󰡔성유식론󰡕(권 제10, 대정장 31, 54중)에서는 열 가지 진여眞如를 설명하고 나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雖眞如性이 實無差別이나 而隨勝德하여 假立十種하니라. 雖初地中에 已達一切이나 而能證行에 猶未圓滿일새 爲令圓滿케 하려 後後建立하니라.”


“비록 진여의 성품이 실제로는 차별이 없지만, 뛰어난 노력에 따라 방편상 10가지 단계로 나눈다. 비록 첫 단계에서 일체를 통달하지만, 수행을 몸소 체험함에는 아직 완전하지 못한 부분이 남아 있어서, 그 완전하지 못한 점을 온전하게 하기 위하여 점차 뒤로 가면서 단계를 설정한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당나라 시절 현수 법장(賢首法藏, 643년~712년)의 󰡔탐현기探玄記󰡕(대정장 35, 373상) 속으로 수용되고, 다시 청량 징관(淸凉澄觀, 738년~839년)의 󰡔화엄경소󰡕(대정장 35, 744상)에 거듭 수용되면서 이후 명·청明淸 때는 물론이고 그들로부터 영향받은 조선의 강당講堂에서도 널리 퍼진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의 불교도들은 인간이란 진여를 갖춘 온전한 존재라고 이해해 왔다. 다만 번뇌로 인해 그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니, 수행을 거듭하여 번뇌를 닦는다. 그로 인해 드러나는 공덕과 지혜에 10가지 차별이 있는 것이지, 진여 자체는 누구나 평등하고 똑같다. 이것이 화엄의 인간 이해이고 󰡔범망경󰡕 10지설의 본뜻이다.


4.


이번 10월호에서는 󰡔범망경󰡕 10지 중에서, 다섯째 지위인 <체성혜조지體性慧照地>를 소개할 차례이다. 이름에 나오는 ‘혜조慧照’란 진실한 지혜로 안팎을 비춘다는 뜻인데, 진실한 지혜란 한마디로 말하면 공혜空慧이다. ‘천’이니 ‘브라만’이니 ‘여호와’니 하는 등등의 절대적 존재에 의해 세상이나 인간사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생성하고 소멸하여 그 어느 것도 영원한 것이 없음을 아는 지혜가 곧 공혜空慧이다. 즉, 인연생기因緣生起의 관계를 명확하게 아는 지혜이다.
이러한 지혜를 갖추면 ‘열 가지 힘’이 발휘된다고 한다. 󰡔범망경󰡕에서는 이를 ⑴ 처력품處力品, ⑵ 업지력품業知力品, ⑶ 과욕력품果欲力品, ⑷ 성력품性力品, ⑸ 근력품根力品, ⑹ 정력품定力品, ⑺ 도력품道力品, ⑻ 천안력품天眼力品, ⑼ 숙세력품宿世力品, ⑽ 해탈력품解脫力品이라고 한다.
첫째와 둘째, 셋째와 넷째는 어떤 행위가 선인지 악인지 알고, 그로 인해 어떤 결과를 초래하며, 그로 인해 형성되는 인간의 성품을 알게 된다. 다섯째는 중생들의 행위가 다양한 줄을 알게 된다. 여섯째와 일곱째는 선정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줄을 알고 그로 인해 어떤 결과를 얻게 되는지를 알게 된다. 여덟째와 아홉째는 현재와 지난 세상에서 중생들이 받는 과보를 알게 되고, 열째는 어떤 수행을 통해 마침내 해탈하는지를 알게 된다.
이상의 ‘열 가지 힘’의 지혜로, 자기 스스로 인과因果를 닦을 줄 알며, 또 일체중생의 인과도 분별한다. 불교의 전문적인 용어가 나와서 어렵다고 느낄 수도 있다. 요즘 말로 하면, 어떤 결과가 있으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또 어떤 행동을 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도 분명하게 아는 것이다. 자신은 물론 타인도 잘 안다. 사업이 어려우면 그 원인을 정확히 알아서 대처하고, 나쁜 짓을 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돌아오는지 잘 알아서 미리 방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