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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나무 가시와 버팀의 미학

주엽나무 가시와 버팀의 미학


홍성범
숲해설가


나무에 관심이 많거나 식물의 생태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주엽나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줄기 전체를 빽빽하게 덮고 있는 기이하고도 날카로운 가시들을 떠올리곤 한다.
줄기 표면에 억세고 기다랗게 솟아난 그 가시들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그 모습이 원래부터 지니고 있던 타고난 형상이려니 생각하기가 쉽다. 그러나 사실 주엽나무 줄기를 찢고 나와 매섭게 솟구친 무성한 가시들은 결코 어쩌다 생긴 장식물이 아니다. 그것은 야생의 초식동물들이 껍질을 벗겨 먹거나 연한 어린 잎을 해치려 달려들 때 주엽나무 스스로 오랜 세월에 걸쳐 그 거센 생존의 위협으로부터 제 목숨을 지켜내고자 온몸으로 짜낸 치열한 방어기제이자 생존의 흔적이다.
한 번 뿌리 내린 곳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나무가 거친 자연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고독한 자구책이 바로 그 뾰족한 가시인 셈이다.
주엽나무는 콩과에 속하는 낙엽대목으로 우리 주변의 산기슭이나 하천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나무다.
여름이면 은은하고 풍성한 잎을 드리우고 가을이 되면 마치 비틀린 칼집이나 열대 과일처럼 길게 꼬인 꼬투리 열매(주엽)를 매달아 독특한 풍경을 자아낸다. 옛 선조들은 이 열매를 천연 비누처럼 물에 풀어서 옷을 빠는 데 사용하거나 한방 약재로 유용하게 쓰기도 했다. 또한 한방에서는 주엽나무의 날카로운 가시를 ‘조각자皂角刺’라 부르며 종기를 가라앉히고 독을 배출하는 귀한 약재로 다루어 왔다. 인간의 눈에는 그저 단단하고 유용한 재목이자 약재로 보일지 모르지만 나무의 입장에서는 줄기 표면의 관다발과 조직을 변형시켜가며 오랜 세월 동안 차곡차곡 쌓아 올린 피나는 방어막이었던 것이다.
주엽나무의 생태를 들여다보면 흥미롭고 경이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가시의 밀도와 크기가 나무가 살아가는 주변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다. 외부로부터의 자극이나 자신을 위협할 만한 포식자가 거의 없는 평화롭고 안락한 땅에서 자란 주엽나무는 가시를 거의 만들지 않는다. 굳이 스스로를 보호할 무기를 만드는 데 소중한 에너지와 영양분을 쏟아부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변에 자신을 해치려는 동물의 접근이 빈번해지거나 생존을 위협하는 자극이 생겨나면 나무는 불과 한두 해라는 짧은 시간 사이에 줄기 내부의 세포를 단단하게 변화시켜 줄기를 뚫고 나오는 날카로운 가시들을 기하급수적으로 키워낸다. 심지어 어린 시절 고난을 겪고 자란 나무는 어른 나무가 되어서도 줄기 아랫부분에 빽빽한 가시 군락을 유지하며 과거의 위협에 대비하는 용의주도함을 보이기도 한다. 외부의 어떠한 도전에도 끝내 무너지지 않고 버텨낸 인고의 세월이 단단하고 매서운 가시라는 눈에 보이는 형태가 되어 세상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비단 주엽나무 뿐만 아니라 식물들의 세계를 둘러보면, 이동할 수 없다는 한계를 극복하고 제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저마다 경이로운 자구책을 발휘하는 사례를 수없이 발견할 수 있다.
식물들은 결코 정적이거나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어떤 식물들은 주엽나무나 장미, 선인장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물리적인 가시와 단단한 껍질을 굳혀 초식동물의 접근을 차단한다. 반면 어떤 식물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고도의 화학 전쟁을 펼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즐겨 먹는 고추의 ‘캡사이신’이나 감의 떫은맛을 내는 ‘탄닌’ 성분은 사실 포식자에게 강렬한 매운맛과 소화 불량을 일으켜 다시는 자신을 탐내지 못하도록 만든 화학적 방어 무기다. 옻나무는 피부에 심한 알레르기와 염증을 유발하는 독성 물질을 분비하여 외부의 접촉을 차단하고, 담뱃잎은 애벌레의 공격을 받으면 공기 중에 특정 화학 물질을 내뿜어 그 애벌레의 천적인 노린재를 불러들이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고도화된 전략을 펼치기도 한다. 소나무나 삼나무는 뿌리와 잎에서 다른 식물의 생장을 방해하는 물질을 내뿜어 자신만의 영역을 굳건히 지켜낸다.
이처럼 가시를 돋우든, 독을 내뿜든, 떫은 맛을 내든 간에 식물이 보여주는 모든 생태적 반응은 결국 제자리에 묶인 채 세상을 버텨내기 위한 숭고한 몸부림인 것이다.
이렇듯 생존을 위해 온몸을 비틀며 견뎌내는 버팀의 과정은 한 번 싹을 틔운 바로 그 자리에서 평생을 살아내야만 하는 모든 식물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자 고귀한 권리다.
사람이나 동물처럼 위험이 다가온다고 해서 이미 깊이 뿌리 내린 보금자리를 훌훌 털고 다른 안전한 곳으로 도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예고 없이 몰아치는 세찬 비바람과 영하의 맹추위,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을 노리는 외부의 도전 앞에서 나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제 몸 안에서 스스로 자구책을 찾아내어 그 고통스러운 시간을 온전히 버텨내는 것뿐이다.
뿌리가 깊을수록 견뎌내야 하는 바람의 무게도 커지지만, 나무는 회피 대신 인내를 선택함으로써 거목으로 거듭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나무의 삶이란 곧 끊임없는 외부의 도전에 맞서 제자리를 지켜내는 ‘버팀’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정호승 시인은 일찍이 그의 시에서 “견딤이 쓰임을 결정한다”고 나지막이 노래한 바 있다. 세찬 풍랑과 모진 바람을 온몸으로 견뎌낸 나무만이 비로소 단단하고 굳건한 재목이 되어 거대한 집을 받치는 기둥이나 보가 될 수 있다. 혹독한 겨울의 맹추위를 끝까지 버텨낸 가지에서만 다가오는 봄날에 가장 눈부시고 아름다운 꽃이 피어난다. 찰나의 편안함에 타협하지 않고 모진 세월을 견뎌내는 인고의 시간 없이 거저 얻어지는 존엄함이나 진정한 가치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견딤의 깊이가 깊을수록 그 존재가 세상에서 쓰이는 쓰임의 크기 역시 비례하여 커지는 법이다.
비단 나무의 생生만 그러할까. 우리 인간의 삶 역시 나무의 일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뜻하지 않은 거센 풍랑을 만나고 오직 홀로 모든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아득한 시간을 버텨내야만 하는 고독한 순간과 직면하곤 한다. 사회적 시련, 인간관계의 상처, 혹은 스스로에 대한 불신과 불안이라는 포식자가 다가올 때 피할 수도 없고 도망칠 곳도 없는 시련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주엽나무가 그러듯 저마다의 내면에 날카로운 가시를 세우고 정신을 바짝 차리며 그 시간을 온전히 견뎌낸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경계와 방어막이 때로는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처럼 느껴질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진 인고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가 버텨낸 모든 흔적들은 나라는 존재를 굳건히 지켜낸 거룩한 훈장이자 삶의 단단한 자산이 되어 있을 것이다.
견디고 버텨낸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비로소 존엄한 삶의 진정한 쓰임과 가치가 완성되듯 지금 우리 각자는 자신의 터전에서 나무처럼 깊숙이 뿌리를 내린 채 묵묵히 제 몫의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 버팀의 끝에서 우리는 한 층 더 깊고 넓은 그늘을 지닌 성숙한 인격체로 자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