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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소원을 성취해야 하는가 -올바른 신행을 위한 제언-

이기운 /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


1. 욕망은 놓아버리고 바람은 서원에 싣고
 가을은 흔히 결실의 계절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가을이 되면 무언가 바라는 바가 많다. 국가적으로는 대선이 있고 회사에는 취직시험 학교에는 입시가 있으며 개인에게는 봄에 세운 계획들이 이루어지는 시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들은 이 가을 유
난히 부처님이 계신 대웅전 문턱을 그 어느 때보다 더 자주 드나들게 된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열심히 부처님 눈치를 보고 청을 드려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이 세상에서 자기가 바라는 바대로 일이 이루어진 사람들은 복권에 당첨된 사람만큼이나 드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청을 드리고 소원을 이룰수 있다는 것인가.
그것은 아마도 우리의 인생살이부터 되돌아보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욕계(欲界)라고 규정하셨다. 이 세상은 수많은 중생들의 바라는 바수많은 욕망으로 건설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의 업과 주위와의 인연으로 태어난다. 그런데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머니 젖을 먹기 시작해서 늙어 죽을 때까지 우리는 무언가를 추구하게 되어 있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든지 무언가를 눈으로 보는 것을 추구하고, 귀로 듣는 것을, 코로 냄새 맡는 것을, 몸으로 감촉하고, 의식으로 무언가 알아채면서, 보다 많이 보다 좋은 것을 추구하고 바라게 된다. 누구는 부자가 되기를 바라고 누구는 높은 지위에 오르기를 바라고 또 누구는 높은 명성이 나기를 바란다.

이와 같이 많은 바라는 바가 많으니 욕망이 충돌하여 이 세상을 사바세계(娑婆世界) 곧 감인토(堪忍土)라고 한다. 감인토란 참아가면서 사는 땅, 참고 살아가야만 하는 땅이라는 것이다. 아침부터 저녘 잠자리에 들때까지 참지 않고 내가 바라는 대로 좋아하는 대로 행하다가는 칭찬 받는 일보다 자기 이익만을 내세운다고 주위사람들로부터 비난 받고 얻어맞을 일이 더 많을 것이다.
 
결국 이 세상은 각자 바라는 바 욕망이 서로 부딪치고 자기의 바람을 이루려고 하기 때문에 내가 뽑히기를 바라고 자기가 남보다 뛰어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런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우리는 탐내고 화내고 어리석음의 마음이 일어나 인생이 고해에 빠지게 되었다.
 
우리의 이런 인연으로 이루어진 욕망은 허망하고 무상한 것이 아닐 수 없다. 허망하고 무상하다는 것은 실체가 아니요 진실한 가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바라는 바가 이와 같이 삶의 욕망이 되었다면 이것은 당연히 놓아버려야 할 것이요, 바른 삶으로 가기 위한 것이라면 반드시 서원(誓願)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서원이란 희구(希求)하는 마음이니, 스스로 깊이 그 마음을 자제하여 발원해서 어떤 일을 이루겠다는 맹세이다. 그러므로 보살들이 지혜와 복덕을 닦는 보살도의 하나로 서원을 세운다. 보살들의 대표적인 사홍서원을 보더라도, 첫째 중생을 다 제도하겠다는 서원은 보리를 이루는 인행이다. 따라서 갖가지 선행을 베풀어 중생들에 이익 되게 함으로써 연인불성(緣因佛性)을 이루게 된다. 둘째는 번뇌를 다끊겠다는 것이니 보리의 직접원인이 되는 번뇌를 다 끊는 정인불성(正因佛性)을 개발하는 것이 되고, 셋째는 무량한 법문을 다 배우겠다
는 것이니 지혜와 덕을 갖추는 보살행으로 요인불성(了因佛性)을 이루는 것이 되고, 넷째는 불도를 다 이루겠다는 것이니 앞의 삼행을 다 원만이 이루는 보살행으로 일체중생에 이익을 주는 행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살들의 서원은 곧 일체 중생에 이익을 주고 참된 지혜와 복덕을 갖추어 불도를 이루게 하는 맹세인 셈이다. 그러므로 법장 비구는 32원을 세우고 아미타불이 되셨고, 지장보살은 지옥의 최후 한 사람까지도 다 제도하고 불도를 이루겠다고 서원을 세우고 지장보살이 되셨다. 또 관세음보살도 또한 불쌍한 중생이 어떤 곳에서 부르든 잘 듣고 제도하겠다는 서원을 세워 잘 듣는 능력인 이른바 이근원통(耳根圓通)을 이루어 관세음보살이 되어 원통전 주인이 되셨다.
 
2. 참회와 정진으로 불보살의 감응을 구해야
이와 같이 서원을 세웠다면 그 실천은 참회(懺悔)와 정진(精進)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곧 우리는 매 순간마다 몸과 입과 뜻으로 업을 짓고 있다. 그 삼업이 청정하지 못하면 서원이 성취될 리 없기 때문이다. 중생들이 삼업이 청정해진다면 우리는 육근이 청정해져 불보살을 감(感)하게 된다. 감한다는 것은 느낀다, 감지한다, 알아챈다는 것. 곧 불보살이 우리 중생을 제도하려고 항상 응(應)하고 있음을 아는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정진해도 그 성취에 차별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불보살의 탓이 아니라 우리 중생들의 몫이다. 마치 대지에 내리는 비는 똑같은 하늘에서 골고루 초목들에게 뿌려주건만 이 빗물을 먹고 어떤 것은 약초를 어떤 것은 독초를 만들어 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바라는 바가 욕망이 되어 이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마치 복권에 당첨되기를 바라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곧 욕망을 버리고 서원을 세워 정진함으로써 우리의 몸과 마음이 청정해져서 불보살의 감응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