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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또 다른 나 -아이와 엄마의 치유와 성장을 위한 기도-

황선미 / 자유기고가



하나, 이해받고 싶은 마음
얼마만큼 시간이 흘렀을까. 아파트 옥상에서 봐라보는 산언저리가 물들어간다. 미술시간에 실수로 덧칠한 프러시안 블루처럼 짙푸른 어둠이 마음을 누른다. 하늘빛이 변해가는만큼 집으로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는 마음이 방망이질 한다. 엄마의 울음소리를 현관 밖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친구들은 학교가 끝나면 학원으로 가야한다. 놀 시간이 없기 때문에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서 아이들이랑 종종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오늘은 내가 2학기에 부회장이 된 후 친해진 회장인 나경이랑 이야기 하다보니까 좀 늦어졌을 뿐인데, 엄마가 왜 저렇게 울고불고 야단인지 모르겠다. 일층에서 인터폰으로 벨을 누를 때부터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겁을 주더니 집 앞에 도착해 보니 엄마 울음소리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용기가 없어서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어제 저녁에 같은 반‘여자애 엄마’가 전화를 걸어와 화가 난 게 아직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네, 우리 애가 장난이 좀 심해서 댁의 따님에게 패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네, 아이에게 따끔하게 야단치겠습니다. 네, 뭐라고요? 우리
아이를 바꿔 달라고요.”
‘......’
“더 확인하실 게 있으신 모양인데 제가 전하겠습니다. 아 네.”
그‘여자애 엄마’는 나랑 통화하길 원했고 난 몇 가지 질문에‘네’라고만 대답해줬다. 통화가 끝난 후 엄마의 고문이 시작됐다.
언제 몇 번 그 여자애 머리를 신발주머니로 때렸느냐는 것이다. 아주 오래 된 일이라 생각도 잘 나지 않지만 그‘여자애 엄마’가 우리집에 전화한 이유가‘신발주머니로 여자애를 친 사건’때문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대충 대답하고 말았다. 그‘여자애 엄마’가 전화로 확인하고 싶어 한 내용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 여자애가 커플로 사귀던 같은 반 남자 애가 전학가자 다른 남자 애를 사귀었고, 그 사실을 전학 간 남자 애가 알게 되어 우리 반 홈페이지가 댓글로 들썩거려 그 여자애가 된통 낭패를 당한 사건 때문이란 걸 난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우리들만의 이야기를 들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자꾸 어두워져 아파트 옥상에서 더 이상 있을 수 없을 것 같다. 옥상 바로 아래가 우리 집인데도 주위가 어두워지니까 괜히 겁도 난다.
엄마가 날 이해하지 못하고 무작정 화부터 낸게 내가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자꾸 심장이 쾅쾅 울린다.

둘, 기다리는 마음
108배를 하기 시작했었다. 108배의 운동효과를 언론보도로 접한 후 벼르던 중 시작한 것이다. 운동이 부족한 생활에 활력을 줄 수도 있고 신행생활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 저런 일 핑계로 하루 씩 거르다 보니 100일 기도를 작심한 마음이 자꾸 흐려진다.
 
108배를 한 날에는 몸도 가볍고‘관세음보살’을 염원한 공덕으로 마음도 편안해져 아이들에게 훨씬 부드럽게 얘기하고 웬만한 일에는 참고 숙고하는 여유도 생겨 한결 안정된 느낌이다. 또한 108배를 하는 동안에는 우리 가족을 향한 소망을 담아 기도하니 더욱 가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게 된다. 특히 아들 둘에 대한 염원은 간절하다. 우리아이들이 맑은 기운으로 학업에 정진하고 꿋꿋하며 건강하게 우뚝 설 수 있길 기원하는 것이다.

아이가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 정신이 아찔하도록 혼란스럽고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자꾸 눈물이 난다. 괜히 아이에게 소리를 버럭지르고 야단쳤나보다. 오늘 아침 108배를 거르고 잡생각으로 오전을 보낸 탓인지 정신이 어지럽다. 난 아이랑 대화를 자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모르는 아이의 모습이 너무 많다.

학생상담자원봉사 활동도 하며 우리아이 또래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자식은 맘대로 안 된다는 옛 어르신들의 얘기가틀리지는 않는 모양이다. 독서치료도 배우고 있지만 실상 우리 아이를 잘 이해하는 데에는 100% 도달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어젯밤에‘이상한 아줌마’에게서 우리아이가 자신의 딸에게 장난쳤다는 이유로 우리아이를 야단치는 전화를 받고 무척 자존심이 상했다. 더욱이 자세한 내용은 확인도 하지 않고 우리 아이만 된통 혼을 내 놨으니 더욱 모자란 엄마 같은 자책감 때문에 힘들었는데 이렇게 아이가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으니 너무 가슴이 아프고 자꾸 눈물만 난다.

아이의 실수 때문에 엄마의 자존감에 상처를 입게 되는 경험을 한두 번 한 게 아닌 데도 매번 사건이 생길 때마다 마음 상해하니 아직 평정심을 얻기 위해서는 더욱 수행을 해야 하는 모양이다.
어느 날 저녁 잠자리에 나란히 누워 아이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아이가 한 말이 생각난다.
‘엄마는 화났을 때 가장 무섭지만 잘 대해줄때도 사실은 좀 무서워요.’

셋, 치유와 성장
“엄마.”
기다리던 아이가 돌아왔건만 엄마는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현관에 들어서는 아이를 내려다 볼 뿐이다. 벌써 밖은 어두워졌는데 더늦기 전에 집에 들어와 고맙다고 부둥켜안고 싶은데도 엄마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 겁을먹은 듯 아이가 슬그머니 책가방을 내려놓고 우두커니 서서 말했다.
“엄마, 죄송해요.”
“뭐........”
엄마와 아이가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늦가을을 재촉하는 찬바람이 볼을 스쳤다. 엄마는 아이와 음식점으로 향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돈가스가 먹고 싶었다.
지금도 세계 어느 곳에서는 치열한 전쟁 중이다. 권력과 또 다른 권력 간의 다툼이 있고 종교와 또 다른 종교 간의 싸움,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투쟁 그리고 아내와 남편, 부모와 자식 간에도 불협화음이 있다.
평화는 작은 곳에서부터 실천되어야 한다.

그 평화의 시작은 가정이 아닐까. 서로의 이야기를 통해 상처를 들어주고 서로를 보듬어 주는 가족 간의 치유와 성장이야말로 부처님 자비세상의 출발점이리라.
평화는 작은 곳에서부터 실천되어야 한다.
그 평화의 시작은 가정이 아닐까. 서로의 이야기를 통해 상처를 들어주고 서로를 보듬어 주는 가족 간의 치유와 성장이야말로 부처님 자비세상의 출발점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