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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업과 윤회

한애경
조계종 포교사단 서울지역단 부단장


옛날에 슈라바스티에 바라문의 스승이 있었는데 이름은 푸루나카샤파였으며 제자 오백 명이 따라 다녔고 국왕과 백성들이 받들어 섬기었습니다.
이때 부처님께서 처음 도를 얻으시고 제자들과 함께 라자그리하성에서 슈라바스티로 가실 때 모습이 너무나 빛나고 정법으로써 가르치심이 넓고 훌륭하셨으므로 국왕과 궁중의 모든 사람과 그리고 온 나라의 백성들이 받들고 공경하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한편 푸루나카샤파는 질투하는 마음이 일어나 부처님을 헐뜯고 혼자 존경을 받으려 하였습니다.
그는 곧 제자들을 거느리고 프라세나짓 왕에게 가서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우리들 장로는 오래 전부터 공부한 이 나라의 옛 스승이고 스님 고타마는 뒤에 출생하여 도를 구하여 진실로 뭐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하며 신기하기는커녕 성스러운 것도 없으면서 스스로 부처가 되었다고 말하고 다닙니다.
그래서 대왕께서는 저희를 버리고 전적으로 고타마와 그 제자들을 받드시니 심히 불편하고 억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부처와 더불어 도력을 겨루어 누가 이기는가 알아보고자 하오니 대왕께서는 이기는 이를 종신토록 받드십시오.”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마침내 대왕은 수레를 타고 부처님께 나아가 예배하고 말씀드렸습니다.
“푸루나카샤파가 부처님과 도력을 겨루어 그의 신통변화를 보이려 하오니 부처님께서는 허락하시겠사옵니까?”
“매우 좋은 일이요. 이레 뒤에 신통변화를 겨루도록 준비해 주십시오.”
왕은 성 동쪽 넓고 좋은 평야에 높은 자리 두 개를 만들었습니다.
높이는 사십 발이고 일곱 가지 보배로 아름답게 꾸몄으며 당기와 번기를 세우고 좌석을 정리하고 정돈했습니다.
부처님과 푸루나카샤파가 앉을 두 자리 중간의 거리는 약 이 리쯤 떨어졌고 양쪽 제자들은 높은 자리 아래에 앉도록 설치하였습니다.
그때 카샤파는 제자들과 함께 먼저 그 장소에 와서 사다리를 밝고 자리에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반사라는 귀신의 왕이 카샤파 무리의 잘못된 질투를 보고 있다가 큰 바람을 일으켜 그들의 높은 자리를 휩쓸어 버렸으며 좌구들은 넘어지고 깃발들은 꺾이고 모래와 자갈들이 휘날려 눈을 뜰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자리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대중들과 함께 조용히 오셔서 높은 자리로 향하시는 듯 했는데 어느 사이에 오르셨고 제자들도 모두 말없이 차례대로 자리에 앉았으며 왕과 신하들은 더욱 공경하며 머리 숙여 절하고 부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원하옵나니 신통변화를 보이셔서 저 삿된 소견을 가진 무리들을 억눌러 항복 받으시고 또 이 나라 백성들이 바르고 진실한 법을 깊이 믿도록 해 주십시오.”
그때 부처님께서는 자리에서 갑자기 자취를 감추시고 곧 허공에 올라 가셔서 큰 광명을 사방으로 펼쳐 동쪽에서 없어졌다가 서쪽에 나타나는 등 이와 같이 사방에서 사라지고 사방에 나타나셨습니다.
몸의 위에서 물을 뿜으시면 아래에서 불을 토하시고 위에서 불을 뿜으시면 아래에서 물을 토하셨으며 공중에 앉고 누우시는 등 열두 가지로 변화하시다가 공중에서 자취를 감추시더니 어느 새 자리에 돌아가 앉으셨습니다.
하늘 사람과 용과 귀신들은 꽃과 향으로써 공양을 올리고 찬양했는데 그 소리가 천지를 진동시켰으며 카샤파는 스스로 도가 없는 것을 깨닫고 머리를 숙이고 감히 눈을 들지 못했습니다.
그 때에 금강력사는 꼭대기에 불이 붙은 금강저를 들고 카샤파를 겨누며 말했습니다.
“왜 그대는 신통을 나타내지 않는가?”
카샤파는 두렵고 당황하여 자리에서 후다닥 일어나 달아났으며 그의 오백 제자들도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거동과 얼굴에는 기뻐하거나 슬퍼하시는 기색도 없이 기타 숲 외로운 이 돕는 절로 돌아가셨고 국왕과 신하들도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인사드리고 물러났습니다.
한편 곤욕을 당하고 도망가던 푸루나카샤파는 길에서 마니라는 우파시카를 만났으며 그는 대뜸 카샤파를 흉보았습니다.
“그대 무리는 어리석어 자기 재주도 생각하지 못하고 부처님과 감히 도력을 겨루려 하였는가? 어리석은 것들이 세상을 속이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그러한 얼굴로 어떻게 세상에 나다니는가?”
카샤파는 제자들 보기가 무척 민망했으나 어느 강가에 이르러 제자들을 또 속였습니다.
“내가 지금 물에 몸을 던지면 반드시 범천에 가서 태어날 것이다. 만약 내가 돌아오지 않거든 그곳에서 즐겁게 지내는 줄 알아라.”
제자들은 기다렸으나 그가 돌아오지 않자 저희들끼리 의논했습니다.
“스승님은 틀림없이 천상에 가셨을 것이다. 우리들도 따라가자.”
카샤파의 제자들은 강물에 몸을 던져 스승의 뒤를 따라 범천에 태어나기를 바랐으나 그들 모두 지은 업에 끌려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그 뒤 이 소문을 들은 국왕은 괴이하게 여기며 부처님께 나아가 말씀드렸습니다.
“푸루나카샤파와 그 제자들은 무슨 인연 때문에 그처럼 어리석었습니까?”
“그들에게는 두 가지 무거운 죄가 있소. 첫째는 세 가지 독이 불꽃같이 훨훨 피어나는데도 저희들은 도를 얻었다고 말하는 것이오. 둘째는 여래를 비방하고 헐뜯음으로써 사람들의 공경과 섬김을 받으려 한 것이니 이 두 가지 죄로써 지옥에 떨어졌소. 재앙과 허물이 재촉하고 핍박하여 그들의 몸을 강물에 던지게 한 것인데 몸은 죽었으나 정신은 한량없는 고통을 받소.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이 그 마음을 거두어 다잡아 안에서 악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면 밖에서 죄가 오지 않소. 마치 국경에 있는 성이 적국과 잇닿아 있을 때도 수비를 튼튼히 하면 아무 두려움이 없어 나라 안 백성들은 편안하고 밖에서 도적이 들어오지 못하는 것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보호하는 것도 그와 같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망령되어 증득했다 재물을 탐하고 행동은 아직 정직하지 못하고 선량한 사람을 원망해 모함하고 잘못된 법으로써 세상을 다스리면 죄가 이 사람을 이끌어 스스로를 구렁텅이에 던지느니라.
국경지역을 방비하는 성과 같으니 안팎을 튼튼히 하여라.
스스로 그 마음을 지키면 법이 아닌 것은 생기지 않느니라.
행동에 틈이 생기면 근심도 오고 지옥에 떨어지게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게송을 끝내시고 왕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먼 옛날 이 세상에 두 마리의 원숭이 왕이 각기 오백 마리의 원숭이를 거느리고 있었소. 한 왕이 질투하는 마음이 생겨 다른 왕을 죽이고 혼자 모두를 다스리려고 여러 번 가서 싸웠으나 늘 이기지 못하고 창피만 당하고 물러났소. 그는 넓은 바닷가로 갔소. 바다가 굽이치는 가운데 물거품이 모여 쌓였는데 높이가 수백 미터나 되었소. 그 어리석은 원숭이 왕은 흰 거품을 설산이라 생각하고 무리들에게 말했소.”
‘나는 오래 전에 ‘바다 가운데 설산이 있는데 그곳은 아주 즐겁고 맛난 과실이 있는 곳이다.’라고 들었다. 오늘 비로소 발견했으니 내가 지금 먼저 살펴보고 과연 즐거운 곳이면 다시 돌아오지 아니할 것이고 만일 그렇지 않은 곳이면 다시 와서 너희들에게 설명해주겠다.’
그는 나무 위에 올라가 힘껏 뛰어 거품 속으로 들어가 바다에 빠져 죽었소. 남은 무리들은 그가 돌아오지 않으므로 그곳이 크게 즐거운 곳이라 생각하고 모두 몸을 던져 빠져 죽자 그들의 씨가 끊겼소.”
부처님께서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질투한 원숭이가 지금 푸루나카샤파며 그 무리들은 바로 카샤파의 오백 제자들이오. 그리고 다른 원숭이 왕은 바로 나의 몸이었소.
푸루나카샤파는 전생에도 나를 질투하다가 죄에 끌려 물거품 무더기에 몸을 던져 그 씨가 끊겼는데 지금 또 나를 비방하다가 모두 강물에 몸을 던진 것이오. 그들은 다 죄의 갚음으로써 헤아릴 수 없는 겁을 지옥에서 지낼 것이오.”
업이란 무엇일까요?
불자라면 누구나 다 절에 가서 스님들의 법문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업 또는 업보라는 단어입니다.
“그것도 업이다.”
업, 업 도대체 업이란 무슨 말일까요. 하도 많이 들어서 아는 것 같은데 막상 설명하기란 난감합니다. 업이란 우리의 행위를 말합니다.
착한 행동 착한 생각은 선업이 되고 나쁜 행동 나쁜 생각은 악업이 됩니다. 선업은 좋은 결과를 가져오고 악업은 나쁜 결과를 가져옵니다. 우리의 하는 행동과 생각이 모두 업이 됩니다.
업은 다음 생, 즉 극락과 지옥, 인간, 천상 등 중에 어디로 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성적표입니다. 물론 현재의 이 몸도 과거의 업에 의하여 태어난 것입니다. 따라서 좋은 일을 많이 하면 행복이 가득한 세상에 태어나고 나쁜 일을 많이 하면 고통이 가득한 세상에 떨어지게 됩니다.
이처럼 평소 자신이 지은 행위에 따라 좋은 세상에 태어나기도 하고 나쁜 세상에 태어나기도 하는 것을 수레바퀴처럼 돌아 간다 즉 윤회라고 합니다.
업이란 우리로 하여금 끊임 없이 여섯 가지 세계 즉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을 왔다 갔다 하게 하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합니다.
업과 윤회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착한 행동을 많이 하여 극락세계에 태어나든가 또는 깨달음을 성취하여 해탈해야 합니다. 극락세계에 태어나면 윤회니 업이니 지옥이니 하는 데에서 완전히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극락과 천당은 다릅니다.
천당은 윤회하지만 우리가 흔히 염불하는 아미타세계인 극락세계는 윤회하지 않습니다. 물론 극락세계에 가더라도 보살로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큰 원을 세우고 스스로 원하는 세계 즉 사바세계 등에 올 수는 있습니다.
현재의 삶을 살면서 택하고 있는 직업도 전생에 지은 업의 소산으로서 그것도 하나의 업에 속합니다.
업보라는 말이 있지요, 그 사람의 과거 행위가 현재의 삶에 반영되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이 지은 업은 여러 수십억 년이 지난다 해도 없어지지 않아서 인연을 만나는 어느 순간에 자기가 지은 업에 대한 과보는 반드시 받으며 그 때문에 업을 잘 지켜야 합니다.
가장 훌륭한 업을 짓는 일은 부처님과 인연을 맺는 일이며 부처님은 이 세상에서 스승 중의 스승이시며 가장 훌륭한 깨달음을 성취하신 분이시기에 부처님과 인연을 맺고 부처님과 업을 함께 한다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업을 짓는 일입니다.
“제악막작 중선봉행 자정기의 시제불교”
일체의 악을 짓지 말며 모두에게 선을 받들어 행하라.
그리하여 그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거룩한 부처님과 가르침에 진실한 믿음으로 귀의합니다.
나무석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