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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 속에서 거듭되는 십이연기의 고통

 











                                                                                                달라이 라마 ┃ 티벳 승왕


고통받는 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한,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열망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수행하는 불교도의 첫걸음은 지금 상태가 고통스럽고, 좌절을 느끼며, 불만족스럽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야, 고통을 일으킨 원인들과 조건들을 찾아내고 싶어집니다.
우리가 고통스런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불교에서 강조하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면 불교를 오해하고 불교가 병적이거나, 비관주의이거나, 고통에 대한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 위험이 있습니다.
고통의 본질을 통찰하라고 부처님께서 그렇게 강조하신 까닭은, 고통에서 벗어날 탈출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의 본질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통의 본질을 깊이 통찰 할 수록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열망도 강해집니다.
불교에서는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는 관점에서 고통의 본질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해탈이라는 개념이 없다면, 고통에 대해서 숙고하며 아무리 오랜 시간을 보낸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무지의 연속체가 중지되면 그런 행동을 하게 하는 의식이 중지 됩니다.
그것이 중지되면 그런 행동을 하게 하는 의식이 중지됩니다.
어떤 의미로는 두 쌍의 인과관계를 설명한
사성제를 자세히 설명한 것이 바로 '십이연기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한 두 쌍의 인과관계 중에서, 한 쌍은 깨닫지 못한 중생들이 겪는 과정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고통의 원인과 고통의 인과관계를 말합니다.

나머지 한 쌍은 깨달은 사람들이 겪는 과정으로서, 수행과 진정한 멸의 인과관계를 말합니다.
부처님께서 이 두가지 과정을 설명하실 때, 십이연기법(十二緣起法, 열두고리의 상호 의존적 발생의 원리)을 가르치셨습니다.

‘십이연기’는 윤회 속에서 일어나는 열두 고리의 연쇄적인 발생인데, 무명으로 시작해서 의지, 의식, 등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깨달음을 얻지 못한 중생들은 원인과 조건이 결합해서 만드는 이런 연쇄과정을 겪습니다.
그런 중생일지라도 수행을 하면, 그 과정을 반대로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된 연쇄과정은 깨달음으로 이끄는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무지의 연속체가 중지되면 그런 행동을 하게 하는 의식이 중지 됩니다.
그것이 중지되면 그런 행동을 하게 하는 의식이 중지됩니다.
어떤 의미로는 두 쌍의 인과관계를 설명한 사성제를 자세히 설명한 것이 바로‘십이연기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