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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사람의 종교도 존중해야 합니다







   달라이 라마
   티베트 승왕


 【 10월호에 이어서 】


오늘 이야기의 본론인 ‘사성제’를 설명하는 동안에, 저는 당연히 불교적 해석이 가장 좋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또한 최고의 종교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불교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대답은 불교가 모든 사람에게 최고라는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제가 불교를 설명하면서, 불교적 해석이 가장 좋다고 말하더라도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모든 종교가 훌륭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제가 말하는 것은 공손한 척 한다거나 외교적 수완으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인류 전체가 불교도로 개종하는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인류 전체가 기독교나 이슬람교도가 될 수도 없습니다. 부처님이 살아 계실 당시의 인도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불교로 개종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타종교에 관한 책을 많이 읽고, 타종교의 수행자들과 종종 만나서 깊고 영적인 체험들, 사랑과 자비심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마음에 진정한 사랑과 자비심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 종교들이 인간의 선량한 마음을 키우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타종교들의 철학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불교도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열반(涅槃)이나 내생(來生)이라는 개념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불교도들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이라는 개념을 어리석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주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라도 어떤 종교를 통해서 선량한 사람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종교의 목적이고 실제로 일어나는 결과입니다. 그것만으로도 모든 종교를 존경해야 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음의 관점을 생각해 봅시다. 부처님은 청중의 수준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불교에는 설일체유부(設一切有部, Sarvastivada), 경량부(經量部, Sautrantika), 유식학파(唯識學派, Citta-matra), 중관학파(中觀學派, Madhyamaka)등의 여러 학파가 생겼습니다. 각 학파들은 경전에 기록된 부처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그렇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가르쳤다면 그분 자신도 사물의 실상을 확신하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들지도 모릅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제자들과 청중들의 정신적 성향이 다양하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종교를 가르치는 주요 목적은 사람들을 도우려는 것이지, 명성을 얻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청중들의 성향에 맞는 적절한 방법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샤까무니(Sakyamuni)부처님은 각 개인의 견해나 권리를 매우 존중하셨습니다. 아무리 심오한 가르침일지라도, 그 가르침이 어떤 사람에게 적절하지 못하다면, 그것을 설명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이런 의미에서 불교의 가르침(佛法)은 ‘약’과 같습니다. 약의 가치는 병을 치료하는 데 있지, 그 값에 있지 않습니다. 아무리 귀하고 비싼 약이 있다 해도 그것이 환자에게 적절하지 않다면 그 약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