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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도그마에 빠진 소위 ‘땅밟기’를 보며

최윤필
한국일보 기자

원로 종교학자인 정진홍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어디선가 들려준 경험담 한 토막입니다. 
어느 날 그가 아끼던 제자 한 사람이 여자친구가 생겼다며 인사를 시키겠다고 하더랍니다.
 
- 그래 어떤 친구니?
- 정말 예쁘고 착한 사람입니다.
- 예쁘다니? 외모가 그렇다는 거니?
- 네, 그 사람보다 더 예쁜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며칠 뒤 그 제자는 약속한 대로 여자친구를 데리고 제 연구실로 찾아왔어요. 그런데….”
그 날의 이야기를 전하며 정 교수는 생각만으로도 민망한 듯 웃었습니다. 적잖이 기대를 하고 있던 터였는데 여자의 외모는 예쁘기는커녕 오히려 못난 편에 더 가까웠고, 정 교수는 기대와 사뭇 다른 현실과 무방비로 맞닥뜨린 그 순간의 실망감을 들키지 않으려고 적잖이 당혹스러웠던 듯했습니다.
정 교수의 경험은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 역시 더러 그와 유사한 경험들을 하곤 하니까요. 아니 우리가 그 제자처럼, 알지 못하는 사이에 누군가를 당혹스럽게 했거나,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랑이든, 예술이든, 일이든, 풍경이든, 무언가에 콩깍지 씌어 열병을 앓아보지 않는 이는 아마 없을 테니까요.  
그 특별할 것 없는 일화를 장황하게 옮긴 까닭은, 경험담 끝에 정 교수가 덧붙인 말을 실감나게 옮기려는 욕심에서입니다. 그는 이런 논조로 말했습니다.
“제 제자가 했던 말은 사랑의 언어지요. 그러므로 일상의 언어, 또 자연과학의 언어와는 다릅니다. 그 말을 일상의 언어로 이해한 나머지, ‘뭐가 예쁘냐? 왜 허풍을 쳤느냐’며 따지고 드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겠지요. 종교의 언어도 그렇게 이해해야 합니다.”
정 교수는(저는) 결국 종교의 도그마를 경계해야 한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그의) 경험담을 들려준 것이었습니다.
그가 말한 도그마란 구약성서와 같은 종교의 근본 교리를 자구(字句) 그대로 수용하고 믿어 신비화하고, 결국에는 저급한 미신의 수준으로 타락해 종교의 근본 윤리인 반성과 자성의 여백을 지워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령 임진왜란 당시 의병으로 활약했던 휴정ㆍ유정 대사의 무용담- 솔방울로 총알을 만들고, 솔잎을 바늘처럼 던져 왜병을 무찔렀다는-이나, 성서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리는 것이 그런 예일 것입니다. 문자로 굳어진 종교적 가르침에서 한치라도 벗어나면 용납하지 못하는 경직된 종교인들, 이웃 종교의 이름 앞에 ‘사탄’이니 ‘이단’이니 하는 낙인을 찍어야만 제 입을 신성하게 지키고 스스로의 신앙적 순결을 유지할 수 있다고 여기는 짓을 경계하라는 의미입니다.
도그마에 갇힌 이들은 조건 없는 사랑, 조건 없는 자비라는 종교의 본질을 제 울타리 안의 사랑으로 왜곡시킵니다. 그 사랑은 이면에 적의를 감추고 있습니다. 울타리 바깥으로 향한 시선에는 사랑이 아닌 증오와 배척의 정념이 이글거리게 됩니다. 소위 ‘땅밟기’라는 짓을 자행한 이들이 현장에서 행한 기도는, 그들이 구사한 기도의 말이 성서의 한 구절일지는 몰라도, 그 순간 신앙인의 언어가 아닌 침략자의 언어로, 종교의 언어가 아닌 도그마의 언어일 뿐입니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자기 자신을 암기한대로 지껄이는 꼭두각시 자동인형으로 타락시킵니다.
반면에 신앙의 가르침이 아름다운 종교적 전통으로 정착한 예는 허다합니다. 부처님이나 예수님 탄신의 기쁨을 이웃과의 나눔으로 승화시킨 예가 대표적일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우리에게 덜 알려진 이슬람교의 한 전통, 이드 알 아드하(Eid al Adha) 축제의 전통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드 알 아드하란 이슬람력 제12월 10일 께-바로 이맘때입니다-부터 닷새 남짓 이어지는 무슬림 최대 축제 가운데 하나로, 우리말로는 ‘희생제(犧牲祭)’ 쯤으로 번역된다고 합니다.
이슬람 성서 코란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어느 날 하느님의 지시에 따라 제물을 바치기 위해 양 한 마리를 이끌고 장남 이스마엘(구약성서에는 차남 이삭)과 함께 예루살렘의 성전산(Temple Mount)으로 갑니다. 그런데 신은 이스마엘을 번제(燔祭)하라고 지시합니다. 제 손으로 아들을 죽여 제단에 바치라는 신의 모진 주문에 번뇌하던 아브라함이 마침내 칼을 드는 순간 신은 지시를 번복합니다. 아들 대신 양을 바치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오늘 날 무슬림의 조상으로 추앙받는 이스마엘은 생명을 구하게 됩니다. 즉 이드 알 아드하는 조상을 살려 그들의 오늘을 있게 한 신의 은총에 대한 감사의 희생제인 것입니다.
이 축제가 시작되면 무슬림 가정에서는 각자 경제적 여건에 따라 양이나 염소, 낙타 등을 사서 가장이 그 짐승을 죽여 신에게 제물로 바칩니다. 그렇게 도축한 가축의 고기 가운데 1/3은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또 1/3은 친구 친척 등에게 나눠줍니다. 나머지 1/3의 고기는 성스러운 축제의 휴일을 맞아 모인 온 가족이 나눠 먹는다고 합니다. 세상이 변하면서 근래에는 전문 도축업자들이 돈을 받고 대신 도축해주기도 하고, 심지어 인터넷으로 돈을 입금하면 그 금액에 합당한 가축을 잡아 불우이웃에게 고기를 나눠주는 봉사단체까지 등장했다고 합니다.
돈이나 고기를 중간에서 가로채는 식의 부정이 개입할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신에게 바쳐진 돈이나 고기는 이미 신의 것이어서 성물(聖物)을 매매한다는 것은 신에 대한 배반이고,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짓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무슬림들은, 경전의 구절을 믿되 도그마에서 벗어나 그 가르침의 참된 의미를 사회적으로 확장시켜왔습니다. 세상의 변화에 맞춰 형식은 조금씩 변형돼왔지만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신의 이름으로 신을 경배하며 세속적 부(富)를 사회적으로 재분배하는 행위를 축제화 했습니다. 부처님의 자비, 예수님의 사랑이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며칠 전 한 일간지 유머란에 소개된 이야기 한 토막입니다. 
한 친구가 묻더랍니다.
“석가모니와 예수의 근본적인 차이가 뭔지 아니?”
이런저런 말끝에 한 친구가 꺼낸 대답이 이렇습니다.
“아마도 헤어스타일 아닐까?”
 
저급하고 다소 불경스럽게 여기질 수 있는 우스개라 옮기기 조심스럽지만 굳이 인용한 것은, 각 종교가 공유하는 본질적 가치의 웅장함에 비하면 각각의 차이란 그리 크지 않은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함께 해보자는 뜻에서입니다.
물론 세상의 변화와 함께 형식뿐 아니라 종교적 금기 자체가 달라지는 예도 있습니다. 근대 부르주아가 득세하기 전까지 중세 기독교회는 대금(貸金)업을 금했습니다. 돈을 빌려준 뒤 받는 이자란 궁극적으로 시간의 소산이며, 시간은 인간이 아닌 신의 것입니다. 중세의 교회는 신성한 시간을 사고파는 것을 불경한 짓으로 금했다는 의미입니다. 그 종교적 금기는 초기 자본주의가 정착하고도 꽤 오랫동안 기독교 사회의 내면에 남아 대금업으로 축재하던 유대인들에 대한 반감을 증폭시킨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대금업은 한층 복잡해진 형태로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금융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원리가 돼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믿고 따르는 종교적 가르침이 100년 뒤, 1,000년 뒤에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변질되지 않도록, 흔들림 없이 지켜가야 할 것들은 있습니다. 그것은 경전 텍스트가 아니라 컨텍스트에 있고, 자구(字句)의 기계적 해석이 아니라 그 글이 뿌리내린 정신의 정수에 천착함으로써 지켜낼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느 새 또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우리는 또 각자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아야 할 때가 됐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