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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살기

승한 스님
봉담선원장


30여 년 전 일이다. 하루는 키가 작고 곱상하게 생긴 젊은 여인이 불공을 드리러왔다. 그런데 무슨 병에라도 걸린 듯 몸이 장작개비처럼 말라있었다.
불공을 마치고 대중들과 함께 공양하는 시간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맛있게 공양을 하는데 그 여인은 밥을 한 숟갈 뜨다말고 숟가락을 내려놓은 채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공양이 끝난 뒤 나는 다실로 여인을 불렀다. 그리고 차를 한 잔 따라주며 사연을 물었다.
여인은 눈물부터 떨어뜨렸다. 시집 온 뒤로 밥을 한 숟갈만 먹어도 음식이 가슴에 체 못 먹는다고 했다.
나는 누구와 함께 사느냐고 물었다. 남편과 함께 홀로 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다고 했다. 시아버지가 6.25 전쟁 때 전사하는 바람에 남편이 유복자로 자랐다는 말도 덧붙였다. 입이 풀린 여인은 조곤조곤 자기가 살고 있는 형편을 털어놓았다.
시댁은 마을에서 부농에 속했다. 선친이 물려주고 간 농토를 홀로 된 시어머니가 유복자를 키우며 억척같이 일해 재산을 더 불려놓았다.
문제는 여인이 시집오고 난 뒤부터의 일이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대문밖엔 일체 못나오게 했다. 밥 짓는 일과 집안 일만 하게 했다. 아무리 일손이 급하고 많아도 들일은 시어머니 혼자 도맡아 하며 며느리는 집안에만 꽁꽁 묶어두고 문 밖 출입을 시키지 않았다.
거기까진 좋았다. 시어머니는 집에만 들어오면 시도 때도 없이 아들을 찾고 며느리를 찾았다. 심지어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아들아, 등 좀 긁어주어라.” “며늘아기야, 냉수 한 그릇 떠오느라.”며 잠자리를 못하게 했다.
이유는 바로 그거였다. 시집살이였다.
나는 여인에게 말했다.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체하는 병을 깨끗이 나을 수 있는데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여인은 눈을 똥그랗게 뜨며 그것이 참말이냐고 물었다. 참말이면 죽는 시늉까지도 하겠다고 했다.
나는 여인에게 주문했다. 집에 돌아가면 오늘 저녁부터 당장 시어머니 모습에 대고 “시어머니, 감사합니다. 시어머니, 감사합니다.” 하고 하루에 천 번씩 하라고 했다. 그리곤 새벽마다 일찍 일어나서 108배를 하도록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여인은 다시 눈을 똥그랗게 치뜨며 내가 왜 그런 사람한테 감사하다고 하냐며, 새벽마다 108배는 할 수 있어도 시어머니한테 절대로 감사하다는 말을 못하겠다고 했다.
나는 정말 죽을 거냐고 했다. 묵묵히 앉아있던 여인이 풀죽은 목소리로, 그러면 스님이 시키는 일이니까 한번 해보겠다고 했다.
100일 쯤 지났을 무렵이다. 어떤 여자가 석작을 이고 씩씩하게 일주문을 걸어 들어왔다. 그리고 법당에 들어가 불공을 드리고 나오더니, “스님, 저 모르시겠어요?” 하고 물었다. 찬찬히 살펴보니 석 달 전 그 여인이었다. 얼굴이 살찌고 윤기가 흘러 몰라봤던 것이다.
사연을 물었더니 여인은 스님 덕분이라며 그날 저녁부터 집에 돌아가 “시어머니, 감사합니다. 시어머니, 감사합니다.”를 주문처럼 외우며 새벽마다 108배를 했다는 것이었다. 밥 지을 때도 (시어머니 얼굴을 때리듯) 아궁이를 때리며 “시어머니, 감사합니다. 시어머니, 감사합니다.” 하고 설거지를 하면서도 (시어머니 얼굴을 빡빡 문지르듯) “시어머니, 감사합니다. 시어머니, 감사합니다.” 하고 빨래를 할 때도 (빨래방망이로 시어머니를 두드리듯) 빨래하며 “시어머니, 감사합니다. 시어머니, 감사합니다.”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시어머니가 참말로 감사해지며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는 것이었다. 뙤약볕 아래서 거머리에 물어뜯기며 그 많은 들일을 혼자 하면서도 자신에게는 집안에서 쉬운 일만 하게 하고, 재혼을 하지 않고 유복자를 잘 키워 자신에게 장가보내주고 햇볕에 탄다며 밭일도 못하게 하는 등 그 동안 시어머니가 했던 일들이 참말로 감사하게 느껴지더라는 것이다.
그날부터 여인은 시어머니 밥만 흰 쌀밥으로 따로 지었다고 한다. 시어머니를 위해 반찬도 정성껏 만들고, 시어머니 밥상에 고기반찬도 매일 올려드렸다고 한다.
처음에는 시어머니가 “네가 미쳤는갑다. 내가 언제 쌀밥 먹는다고 했냐?” “돈도 없는데 무슨 고기반찬이냐?”며 먹지도 않고 팩 돌아앉아버렸다고 했다. 그래도 여인은 “시어머니,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날마다, 끼니 때마다 똑같이 해드렸더란다. 그러자 며칠 뒤부터 시어머니가 쌀밥과 고기반찬을 드시더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들에서 조금 일찍 돌아온 시어머니가 마루에 앉아서 여인을 부르더란다. 그러더니 손을 덥석 잡고, “아가, 그 동안 내가 잘못했다.” 하면서 펑펑 울더라는 것이다.
시어머니가 우는 것을 보자 여인도 눈물보가 터져 그날 오후 내내 고부가 두 손을 틀어잡고 마당이 홍수가 되도록 울었단다.
그 뒤로 시어머니는 완전히 달라졌다. 잠자리에 든 아들과 며느리를 부르지도 않는 것은 물론 일손이 딸릴 때는 며느리를 데리고 나가 (힘들지 않은) 일을 시키며 며느리를 살갑게 대했다. 여인도 그런 시어머니가 더욱 감사하게 느껴지며, 밥을 한 그릇씩 다 먹어도 가슴이 체하지 않고 살까지 통통 쪘다는 것이다.
나는 여인을 아낌없이 칭찬해주었다. (그렇게도 시집살이를 시키던) 시어머니가 변한 것은 여인(며느리)이 먼저 변했기 때문이다. 며느리가 먼저 변하니까 시어머니도 잘못을 뉘우치고 본래의 시어머니가 된 것이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살다보면 미운 사람이 생길 수밖에 없다. 미움은 묘한 속성을 갖고 있다. 미운 사람은 볼수록 미운 짓거리만 하고 더 미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잘 관찰해보면 그 미움을 만들어낸 건 우리 마음이다. 우리 마음이 미움을 만들어 낸거지 미운 상대방은 본래 그대로 있을 뿐이었다. 설혹 그 사람이 미움의 원인을 제공했더라도 그 마음을 낸 건 우리 자신이다.
우리가 부처님 공부를 하는 건 그 마음을 닦기 위해서다. 내 마음을 잘 닦아 내 마음이 ‘부처님 마음’이 되면 화나고 미워할 일이 하나도 없다. 나만 고통스럽고 손해 볼 뿐이다. 상대방은 내 미움 때문에 고통스러워하지도 않고 전혀 손해 볼 일도 없다.
유일한 해결책은 참회밖에 없다. 며느리처럼 통절한 참회를 통해 ‘부처님처럼’ 자비스러운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을 닦는 수밖에 없다.
감사하는 마음은 바다처럼 넓다. 바다처럼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수용한다. 우리가 부처님 공부를 하는 것도 그런 바다가 되기 위해서다. 바다가 되어 ‘바다 도장(海印)’을 찍기 위해서다. 바다는 만상을 비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