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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단풍 속으로

수정향 도현수
보명사 불자


지난 11월 4일 가을 막바지에 보명사 보살님들이 순례길을 떠난다기에 늦게 합류하게 되었다.
인천에서 가까운 곳이라 해서 무작정 따라나섰고, 어디로 가는지 묻지도 않았다.


이렇게 처음 도착한 곳이 경기도 안성시에 위치한 칠현산 칠장사 절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오는 것은 계곡에 즐비하게 서 있는 주황색 감이다. 잎은 없고 앙상한 가지에는 수많은 감이 달려 있어서, “어머, 어머, 감 봐라!” 연달아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곳을 아는 보살은 어디에서 기도를 올려야 좋을지 알고 있기도 했다. 처음 와본 나는 초 2개를 샀다.
오르막 나한전으로 가는 길에는 나무로 만든 다리가 있는데 이 다리를 건너가면 합격한다고 해서 한 컷 찍었다.
나한전은 ‘암행어사 박문수가 과거시험을 보기 전에 기도를 드리고 잠이 들었는데 꿈에 나타난 나한님이 과거시험 구절을 가르쳐주어 장원급제했다는 설화가 내려오고 있다’고 전했다. 조용한 절은 보살님들로 인해 법당이 가득했다. 그날 기도 스님은 “일 년에 수능기도가 3번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반가움을 전했다.
드디어 점심시간이다. 아무리 좋은 구경도 식후경이라고 하지 않았나. 점심은 보명사 불교대학 13기가 찰밥을 준비해 오고, 회장님은 밑반찬과 국을 끓여 왔으며, 1기 회장님은 배추겉절이, 보살님들이 반찬 한 가지씩 해 와서 그야말로 풍성한 뷔페가 되었다.
점심을 먹은 보살님들은 높다랗게 달린 감을 향해 손을 뻗어 보기도 했지만, 턱없이 모자란다. 저마다 감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댄다. 눈이 시리다고 안경 쓰고 한 컷 다정한 포즈로 찰칵, “에이 너무 멋없다.”며 팔을 올려 하트로 찍찍~~~, 어린 소녀 같은 행복한 모습이다.
감나무 밑에 있자니 감을 따고 싶은 충동이 계속 일어난다. 아무리 배경삼아 찍어대도 따고 싶어진다. 폴짝폴짝 뛰어 손을 뻗어도 닿을 듯 말듯 애만 태운다. 감나무 옆 컨테이너 밑에 길쭉한 막대를 발견하고서는 ‘이걸로 딸 수 있겠지~’ 싶어 감을 향해 툭 쳐 보지만 어림도 없다. 이번에는 약간 끝이 고부라진 막대기로 조금 낮아 보이는 감나무를 찾아 툭툭 쳐서 결국 3개를 땄다. 크기는 달랐지만, 빛깔만큼은 똑같다. 그중 두 개는 내가 가졌다. 땄다는 뿌듯함에 차에 몸을 실어 떠났다.
차 안에서 감을 보니 자꾸 무거운 마음이 든다. 기쁘지가 않다.
“부처님이 노한 것 아니겠지…. 절에 있는 것에 손을 댔다고 혼내는 것은 아닐까?…”
더는 기쁘지가 않다.


두 번째 들른 곳은 서운산 석남사 절이다.
그곳에도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아주 작은 감나무에는 새들을 위해 남겨둔 듯한 감 하나가 달려,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의 넉넉함을 느끼게 했다.
감나무를 보자니 아직도 마음이 무거웠다. 석남사 법당으로 오르는 길은 돌계단으로 되어 있어서 또 다른 절의 풍경을 엿볼 수 있었다. 돌계단을 의자 삼아 단체 사진을 찍었다. 주차장을 향한 발걸음은 삼삼오오 모여 웅성 대고, 우리가 탈 버스는 자꾸만 헛발질만 해대고 있다.
주차장이 좁아 들어오기 힘든 곳을 후진해서 대형 버스가 들어 왔으니…. 산사는 ‘붕붕~~’ 소리에 적막을 깬다. 몇 번을 해도 되지 않자 누구라 할 것 없이 돌을 날라 움푹 파인 곳을 메우고 후진할 때는 두 팔을 번쩍 들어 함성으로 위험성을 알렸다. 몇 번을 시도한 끝에 일행은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가슴을 쓸어 내렸던 순간이지만, 혼자가 아닌 여럿이 모여 힘을 모으니 해결이 된다는 뿌듯함을 느꼈다.
절에서 대면대면 했던 보살들도 다 같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보다 더 가깝게 느낀 적이 있었을까?


마지막으로 들은 곳은 용이 승천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서운산 청룡사 절이다.
마을 어귀부터 감이 보였지만, 이내 눈길을 돌렸다. 청룡사는 해설사가 있어서 다른 절과는 좀 달라 보였다.
“여러분, 잘 오셨습니다.”
해설사가 인사와 함께 청룡사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준다. 해설사에 의하면 내년부터는 대웅전의 옛 모습을 볼 수 없다고 했다. 지어진 지 오래되어 무너질 위험이 있어서 다시 지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기둥으로 처마를 받치고 있다.
오랜 세월 보살님들과 함께해 왔던 대웅전이 늦가을 단풍잎 떨어지듯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는 듯하여 가슴이 아팠다.
대웅전의 기둥은 한 아름이 넘는 나무 둘레와 울퉁불퉁한 원래 그대로의 나무 모양이다. 눈으로만 쓱 보고 다녔던 절에 해설사가 있어 자칫 지나치기 쉬운 부분까지도 알 수 있었던 곳이다.


이렇게 순례는 끝나지만, 우리 집 식탁에는 크기가 다른 두 개의 감이 덩그렇게 놓여 있다. 생각에 잠긴다.
“보명사 절에 계신 부처님께 놓아 드릴까?”
울긋불긋 단풍잎, 산사에 노랗게 핀 들국화, 절 지붕 위를 부웅~ 부웅~ 날아다녔던 벌, 봄이 아닌데도 쑥이며 냉이와 달래가 파릇하게 올라와 있던 모습, 모이 쪼아 먹던 산새들의 지저귐, 보살님들이 함께 힘을 합쳐서 비좁은 공간에서 대형버스를 돌렸던 이야기 등을 전해 줄 수 있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