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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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부처님이 오셨는가?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한국선학회 회장


1.
오월은 계절도 좋지만 많은 경축일이 있어서 더욱 좋다. 부모님의 고마움을 다시 생각하고, 어린이들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고, 또 스승의 은혜를 다시 생각하고, 게다가 불자들은 부처님 탄신일이 있어서 그 분이 인류에게 남긴 사상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부처님오신날’을 계기로 불기佛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가져보기로 한다.
불기佛紀를 사용하는 방식이 둘이 있다. 하나는 북방불교의 설이다. 이 설의 근원은 『주서이기周書異記』인데, 이 책에 의하면 주周 나라 소왕 26년 갑인년(기원전 1027년) 4월 8일 부처님이 탄생하신다. 이때를 세존 응화應化 원년元年으로 삼았다.
다른 하나는 남방불교의 설로 『중성점기衆聖點記』를 근거로 한다. 세존께서 음력 2월 15일 열반에 드신다. 그해 여름 안거(음력 4월 15에서 7월 15일까지)를 마치면서 제자들이 세존 없이 한 철 보낸 것을 기념하여 점點 하나를 찍었다. 이후로 계속 그렇게 더해 갔다. 이렇게 되면 세존께서는 기원전 485년에 입멸하신 것이 된다.
이런 식으로 본다면 금년 2017년 5월 3일 ‘부처님오신날’은, 북방식으로 하면 세존 응화 3043년이 되고, 남방식으로 하면 불멸 2560년이 된다. 금년 하안거(5월 10일부터 9월 5일까지)를 마치면, 즉 9월 5일부터 불기 2561년이 시작되고, 금년 초파일(5월 3일)부터 세존 응화 3042년이 된다. 한국이 서력기원을 사용하다보니, 달력이 한 해에 응화應化도 변하고, 불멸佛滅도 변하고, 물론 단기檀紀도 그렇다.
위의 두 전통에는 각각 다른 철학이 있다. 북방의 전통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법신法身의 응화신應化身으로 본다. 이 분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부처님이시다. 기저귀를 차고 젖을 먹지만 부처님이시다. 북방의 불자들은 법신의 상주하심을 믿고, 그 법신이 응화하여 사바세계의 교주로 오신 석가 부처님을 섬긴다. 반면에 남방의 전통에서는 세존 없이 안거를 지낸 것을 기념했다.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세존과 함께 안거를 했는데 이제 스승의 자리는 텅 비었다. 그 자리를 바라보는 제자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우리 불자들은 초파일을 법신이 응화한 날로 기념하는가? 아니면 세존 없이 매년 안거를 지내는 그 심정으로 기념하는가? 시방삼세에 상주하시는 법신도 안 믿고, 그렇다고 안거도 안 하는 불자들은, 그가 출가이든 재가이든 우리 세존의 제자는 아닐 것이다.


2.
이상의 이야기를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처의 몸(佛身)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라는 깊은 철학을 알아야 한다. 우선 ‘진여법신眞如法身’에 대해서 알아보자.
진여의 본바탕과 속성은 모든 범부·성문·연각·보살·부처 어느 경우라도 늘지도 줄지도 않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성되거나 소멸하는 것도 아니어서, 궁극적으로는 항상 변함이 없어서 본래부터 진여의 성품 속에 모든 공덕을 다 갖추고 있다. 말하자면 진여의 본바탕에 큰 지혜 광명의 기능이 있기 때문이며, 법계를 두루 비치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며, 진실하게 아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며, 자성청정自性淸淨한 마음의 기능이 있기 때문이며, 상常·낙樂·아我·정淨의 기능이 있기 때문이며, 청량하여 불변하면서도 자유자재한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진여의 본바탕과 속성’에는 항하의 모래보다 많은 불리不離·부단不斷·불이不異·부사의不思議한 불법佛法을 간직하고 있고 결코 부족한 것이 없는 기능 때문에 여래장如來臧이라 하며 또한 여래법신如來法身이라고도 이름 한다.
다음은 ‘진여법신’의 작용에 대해서 설명해 보겠다.
진여의 작용이란 이른바 모든 부처님과 여래가 본래 인지因地에 계실 때에 대자비를 일으켜 모든 바라밀을 닦아서 중생을 교화하시려고 큰 서원을 세워 모든 중생계를 끝까지 해탈시키고자 하시되, 겁劫의 수를 한정하지 않고 미래가 다하도록 모든 중생 돌보기를 자기 몸과 같이 하기 때문에 중생이라는 상相을 내지도 않는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중생과 자신의 몸이 진여라는 측면에서는 평등하여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큰 방편의 지혜가 있기 때문에 무명을 없애고, 본래의 법신에 원래부터 불가사의한 갖가지의 업의 작용이 있어서 진여와 더불어 모든 곳에 편재함을 알면서도 그런 티를 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말하자면 모든 부처님과 여래는 오직 법신法身으로서 지상智相의 몸이다. 제일의제第一義諦에는 세제世諦의 경계가 없어서 (모습이나 작용으로) 드러남(施作)이 없지만, 다만 중생이 보거나 들으면 이익을 얻기 때문에 용用이라 말할 뿐이다.


3.
다음은 응신과 보신의 작용에 대해서 알아보자. 진여의 작용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분별사식分別事識에 의한 것으로 범부와 이승의 마음으로 보는 것을 응신應身이라 한다. 그들은 이것이 전식轉識으로 인해 나타난 것인 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밖으로부터 온 것이라 여기고, 응신이 가지고 있는 갖가지 모습(色分齊)을 취하지만 이는 다 제대로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둘째는 업식業識에 의한 것이다. 이는 모든 보살이 초발의初發意로부터 보살 구경지에 이르기까지 마음으로 본 것이니 이를 보신報身이라 한다. 그 몸에 무량한 모습이 있고 모습에 무량한 상相이 있고 상에 무량한 호好가 있으며, 머무는 의보依報도 셀 수 없는 갖가지 장엄이 있다. 여러 장소에 다양하게 나타나 일정한 모습(分齊相)이 없으며, 계셔야 할 곳에 늘 상주하셔서 훼손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이러한 공덕은 모두 여러 바라밀 등의 오염 없는 수행(無漏行)의 훈습과 진여 본각의 불가사의한 훈습으로 인해서 성취된 것으로 셀 수 없는 즐거움의 기능(樂相)을 구족하였기 때문에 보신報身이라 한다.
또 범부에게 보이는 것은 곧 추색.色인데, 6도 중생이 보는 게 제각기 달라 즐거움의 기능(樂相)을 받지 못하는 것이 여러 가지 종류이므로 응신應身이라 한다. 다음 초발의 보살 등은 진여법을 깊이 믿기 때문에 보신을 약간만 보는데, 보신 부처님이 가지고 있는 장엄한 색상色相 등등의 현상이란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어서 일정한 모습(分齊)을 떠났으며, 오직 마음에 의하여 나타나면서도 진여와 동떨어진 게 아님을 안다. 그러나 이 보살은 아직도 스스로를 분별하고 있으니 아직 법신法身의 지위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초지인 정심지淨心地에 오르면 보는 것이 더욱 미묘하여 그 작용이 더욱 훌륭해진다. 그리하여 보살지의 마지막 단계에 오르면 보는 것이 완전해진다. 만약 업식이 없어지면 보는 견상見相이 없어지는데, 모든 부처님의 법신은 이것이니 저것이니 하는 모습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4.
법신과 색신의 관계에 대해서 더 살펴보자. 어떤 사람이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즉, “만약 모든 부처님의 법신이 색상을 여의었다면 어떻게 색상을 나타낼 수 있겠는가?” 이런 대답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이 법신은 색의 본바탕이기 때문에 색을 나타낼 수 있다. 이른바 본래부터 색色과 심心은 둘이 아니다. 왜냐하면 색의 본성은 곧 지智인 까닭에 색의 본바탕에는 형체가 없는 것을 두고 지신智身이라 이름하며, 지성智性은 곧 색色인 까닭에 법신이 모든 곳에 두루 한다고 하는 것이다.
나타낸 색이 일정한 모습이 없으니 중생의 마음을 따라 시방세계에 무량한 보살과 무량한 보신과 무량한 장엄을 나타내되 각각 차별되어 모두가 일정한 모습이 없으면서도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이는 심식心識의 분별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진여가 가지고 있는 자재한 작용의 기능 때문이다.
금년 2017년 5월 3일은 법신부처님께서 사바에 응화應化하신 날로 즉 3042번째 생신날이다. 달처럼 해처럼 영원하신 법신부처님이시지만, 중생의 몸에 의탁하여 진리를 보여주시려고 사바에 출현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