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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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불교의 청사진(8)

성운星雲 스님
대만 불광산사 개산조


<지난호에 이어서>
보통 사람은 효도라고 하면 그저 자신의 부모만 지극 정성으로 봉양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린 까마귀가 성장한 뒤에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어 은혜를 갚는다 하니, 부모를 봉양하는 기본적인 단계가 효도라는 것은 까마귀와 같은 미물도 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부모에게 효를 다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친족과 온 민족, 일체의 중생에게 효를 다하도록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노인을 공양하고 아이를 양육하는 것 역시 모두 효를 다하는 행위이며, 자비로 기쁘게 보시하는 것 역시 대중을 향한 효도와 공경심이 바탕이 된 것이다. 우리는 부모에게 뿐만 아니라 민족, 동포, 인류에게까지 모두 효를 다해야 한다. 또한 웃어른에게 뿐만 아니라, 장애인과 노약자들도 역시 효로써 돌봐야 한다.
‘효’란 사랑하는 마음의 표현이며, 국가와 가족에 대한 진실된 감정의 표출이다. 효는 인아人我 사이에 마땅히 가져야 할 책임이며, 인륜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장유유서長幼有序를 유지시켜온 효는 부모가 자녀에게로 세대를 이어 물려주는 미덕이다.
효란 생명에 대한 지극한 감사이자, 원망도 후회도 없이 먹여 길러주신 은혜에 대한 보답이다. 불교는 자신을 위한 사랑은 소효小孝, 가족을 위한 사랑은 중효中孝, 국가와 민족을 위한 것은 대효大孝라고 여기고 있다.
『우란분경盂蘭盆經』에서 “불제자로서 효순孝順의 도를 닦는 자라면 마땅히 생각마다 항상 부모의 은혜를 생각하고, 현생의 부모와 과거 칠세七世의 부모까지 공양하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현세의 부모에게 효를 다하는 것은 물론이고, 과거 칠세의 부모와 일체 중생의 부모까지 공양하라고 가르치고 계신다.
그러므로 효란 지금의 부모에게 효를 다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효도는 자신의 부모에서 시작하여 ‘남의 부모를 자기의 부모처럼 공경하고, 남의 자식을 자기의 자식처럼 사랑하라’는 말처럼, 사회 대중은 물론 일체의 무량무진無量無盡한 중생에게까지 ‘효의 범위’를 확대하여야 한다.
자신의 부모뿐만 아니라 더 많은 중생의 부모에게 은혜를 베풀고 일체의 번뇌를 온 힘을 다해 없애주는 것이야말로 불교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효이다. 『금강경』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중생인 난생卵生·태생胎生·습생濕生·화생化生 등을 모두 제도하여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도록 하리라”는 부처님의 말씀은 중생을 위해 효를 다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충이 나라와 국민, 그리고 자신과 관계된 것이라면, 효는 부모와 타인, 그리고 삶과 관계가 있다. 삼강오륜을 주장하는 중국 문화에서도 효를 그 중심이라 할 만큼 인생 전체의 핵심을 효도의 천명에 두고 있다. 의미를 확대해 보면, 국가에 대한 효가 곧 충이요, 형제에 대한 효가 곧 공경이요, 친구에 대한 효가 곧 의리요, 대중에 대한 효가 곧 인仁이다. 특히 최근에 부르짖는 효도는 어떻게 하면 더 능동적으로 부모를 봉양하고, 노년의 외로움과 고통을 해소하며, 내 민족 내 동포의 노인문제까지 해결할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큰 효다.
인간세계에서 충효는 상호 의존적이다. 충직한 개가 주인을 위해 충성을 다함은 주인이 그에게 베풀어준 은혜에 감사하기 때문이다. 신하가 자신이 모시는 사람에게 충성을 다함은 군주가 나를 알아봐 주고 아껴준 까닭이다. 타인이 우리에게 충과 효로써 대하게 하려면 우리가 먼저 상대방에게 충성과 효도를 보여주어야 한다.
불가에서는 “부처님을 멀리 영산靈山에서 찾지 마라, 영산은 너의 마음속에 있나니. 사람이 저마다 영산보탑을 지니고 있으니, 그 영산탑 아래에서 수행함이 옳으리라(佛在靈山莫遠求 靈山只在汝心頭 人人有個靈山塔 好向靈山塔下修)”는 게송이 전해져 오고 있다. 충효란 자신의 마음속에서 분출되어 나오는 일종의 감정이자 재능이며, 사랑하는 마음이자 아름다운 미덕이다.
충효는 인류의 윤리, 강상綱常과 연결되어 있다. 충효의 정신을 널리 드높여 충효, 자비, 사랑이 언제 어디서나 가득하게 해야 사회는 질서가 잡히고, 가정은 화목해진다.


7. 재부관財富觀 : 이재지도理財之道


인생을 살면서 정당한 사업을 갖고 근면하게 경영하여 의식衣食이 풍족해야 생활이 안정되고, 그 다음에 온갖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다. 이를 일러 ‘의식이 풍족한 후에야 예악禮樂이 흥한다’ 말할 수 있다.
과거에 원시불교 수행자는 대부분 청빈한 수행만을 중요하게 여기고, 풍부한 재물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소박한 생활을 추구하며 청빈 사상을 주장했다. 걸릴 것 없는 소박함이야말로 참다운 수행이요, 욕심 없이 깨끗해야 도를 이룰 수 있다고 여겼다.
대승불교의 경전 중 『아미타경』에는 극락세계를 표현한 구절이 있다. 『아미타경』에 등장하는 극락세계는 바닥이 황금으로 덮여 있고, 궁전 누각은 모두 칠보로 단장했으며 지극히 장엄하고 화려하다. 보살은 모두 머리에 보석으로 치장한 관을 쓰고 영락으로 몸을 치장하였으며 부귀하기가 비할 바가 없다. 그러니 불도를 배우고 수양하는 사람은 몹시 가난함을 비할 바가 없다. 그러니 불도를 배우고 수양하는 사람은 몹시 가난함을 청빈하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대보적경』에서 “재가보살이 여법하게 돈과 재물과 봉읍封邑을 쌓아 모으면 여법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설한 것처럼, 불교에서는 올바르고 정당하게 구하기만 하면 재가신도 또한 부귀와 영화를 누리고 재물을 모아 삶을 영위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또한 재물이 생긴 후에는 반드시 ‘부모와 처자와 노비와 모든 심부름꾼에게는 여법하게 재물로써 베풀어주라’고 하였다. 재가자는 삶을 영위하면서 재물을 모으되 도리에 맞아야 하고, 팔정도의 정업正業과 정명正命에 합당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삶을 영위하기 위해 갖는 이러한 직업에는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거나, 소나 양을 방목하는 목축업을 갖거나, 돈을 받고 집을 빌려주는 것 등이 있다.
『잡아함경』에서는 “삶을 영위하는 업으로는 농사를 짓거나, 장사하거나, 소나 양을 방목하여 번식시키거나, 돈을 받고 세를 놓아 이익을 구하는 것이 있다”라고 말했다. 오로지 본래 가진 돈만으로 이익을 추구하고 부지런히 힘써 돈을 모은다면 농업이나 목축업으로 수확하든, 상인이 무역하든, 기업이 경영과 투자로 이윤을 불리든 모두 불교에서 허락하는 경제적 생활 영위 방식이다.
반대로 남의 물건을 빼앗고, 위법하여 횡령하고, 남의 것을 빌린 뒤 갚지 않고, 맡긴 물건을 내 것으로 삼고, 기만하여 재물을 얻고, 권세에 빌붙어 구차하게 얻고, 올바르지 않게 경영하고, 속여서 투자하게 만들고, 고리대금을 하는 등 불법적으로 재물을 구하는 것을 불교에서는 허락하지 않는다.
이 밖에도 독극물의 판매와 인신매매 등 법률에 저촉되거나 도살, 술집, 도박 등 부처님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부당한 직업은 살생하지 말라(不殺生), 도적질하지 말라(不偸盜), 정한 부부 관계 이외에 음사淫事하지 말라(不邪.), 거짓말하지 말라(不妄語), 독을 먹지 말라(不吸毒) 등 불교의 근본계율에 저촉되므로 불교에서는 허락하지 않는다.
『중아함경』은 재물을 모으는 데 하지 말아야 할 여섯 가지 바르지 못한 도리를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첫째, 도박, 게임, 시합 등 놀이로 재물을 구함은 바른 도리가 아니다.
둘째, 가족을 돌보지 않고 방탕하게 지내는 등 바른 행위를 하지 않고 부적당한 시간에 재물을 구함은 도리가 아니다. 부적당한 시간이란 밤낮이 뒤바뀐 것을 가리킨다.
셋째, 술 마시고 방탕하면서 재물을 구함은 바른 도리가 아니다. 술은 성품을 어지럽히므로 술을 마시는 사람은 필히 일은 하지 않고 방탕하기 쉽다.
넷째, 삿된 가르침을 가까이하여 재물을 구함은 바른 도리가 아니다. 악한 친구를 가까이하면 재물을 얻기는커녕 도리어 재산을 탕진하고 목숨까지 잃을 수 있다.
다섯째, 놀기 좋아하며 재물을 구함은 바른 도리가 아니다. 가무와 기생을 좋아하면 낭비하기 쉽다.
여섯째, 게으르면서 재물을 구함은 바른 도리가 아니다. 음탕하게 놀기 좋아하면 일하기를 싫어하고, 매사에 구실을 만들어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상 여섯 가지 경우는 재물을 벌어들이지 못하고 소비만 할 뿐이다. 현세에 신체와 정신을 병들게 할 뿐만 아니라 다음 생에서도 번뇌의 악도에 떨어져 사람으로 태어나지 못한다. 그렇기에 바른 도리가 아니라 하는 것이며, 사람으로서 나가야 할 올바른 길이 아니라고 일컫는 것이다.
돈과 재물이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잡아함경』에는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한 몫은 먹는 데 쓰고
두 몫은 살림에 쓰고
나머지 한 몫은 간직해 두어
곤궁할 때를 미리 대비하여라.


당신 한 달 월급이 100만 원이라고 하자. 그러면 당신은 그 가운데 40만 원은 사업을 경영하는 데 사용하고, 20만 원은 가정의 생활비로 사용해야 한다. 또 20만 원은 비상시를 대비하여 저축해야 하고, 남은 20만 원은 보시라는 명목으로 사회에 회향하여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데 쓰이도록 해야 한다.
이 밖에도 『대보적경』에는 부처님께서 파사닉 왕波斯匿王의 예를 들어 재물의 처리 방법을 알려주는 구절이 있다. 파사닉 왕은 생활비에 구애받지 않으므로 3등분으로 나눴다. 삼분의 일은 종교에 공양하고, 삼분의 일은 빈곤한 자들을 구제하는 데 사용하며, 나머지 삼분의 일은 국가에 헌납하여 재정 자원으로 사용토록 하였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