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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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惺’을 통한 불교 공부

현재호
후애마이(Who am I)연구소 소장
어떤 문제이든 ‘선행’이라는 처방전이 특효약입니다.(cafe.daum.net/sun-order)


오늘은 한자漢字 중에서 깨달음을 의미하는 ‘성惺’을 통해서 지혜로운 삶을 꿈꿔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주 사용하는 한자는 아닙니다만 도리道理를 기반으로 차근차근 그리고 꼼꼼하게 생각 또는 행동을 한다는 의미로 한문漢文에서 쓰입니다.
사실은 『선가귀감』을 읽다가 ‘성惺’이 눈에 띄어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선가귀감』의 한 구절을 읽어 보시죠.


공부工夫는 여조현지법如調絃之法하야 긴완緊緩에 득기중得其中하므로
공부는 거문고 줄을 고르듯 팽팽하고 늦음이 알맞아야 하므로


근칙근집착勤則近執着하고 망칙낙무명忘則落無明하리니
너무 애쓰면 집착하기 쉽고 잊어버리면 무명無明에 떨어지게 되니


성성역력惺惺歷歷하고 밀밀면면密密綿綿이니라.
성성하고 역력하면서도 차근차근 끊임없이 해야 한다.


셋째 줄에 ‘성성惺惺’이란 말이 나오죠?
성성은 ‘도리를 확실히(꼼꼼하게) 깨닫는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성惺’은 왜 깨닫는다는 의미를 갖게 되었을까?


惺 = 마음 심心 + 별 성星


마음 심 : 마음입니다. 온 몸의 피가 모이는 심장을 의미하죠.
심장에 모인 피는 우리의 눈망울을 만듭니다.
나쁜 생각을 했다면 눈이 날카로워질 것이고
고운 생각을 했다면 애잔하고 서글서글한 눈빛을 띠겠죠.
인간은, 유독 한 곳만 빼고 나머지 모든 근육을 자유롭게 통제 가능하다고
합니다.
어딜까요?
눈과 눈 주변 근육입니다.
선한 생각을 많이 하시는 분은 눈 밑에 살짝 홈이 파이듯 곡선이 생깁니다.
관상학에서는 이를 ‘음즐궁’이라고 하지요.
음즐궁이 있는 사람은 이타심이 많다고 합니다.
(다크서클과는 다릅니다. ^^)


별 성 : 별입니다. 하늘에 총총히 떠 있는 별.
무엇을 ‘별’이라 할까요?
우리가 별이라고 말하는 것들 중에 진짜 별은 몇 개 일까요?
‘달’처럼 태양의 빛을 반사시켜서 빛을 내는 것은 별이 아닙니다.
하지만,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별이 있습니다.
이것을 진짜 ‘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星 = 해 일日 + 날 생生


즉, ‘해’처럼 스스로 (날생) 발 하는 것이 별입니다.


그렇게 ‘해’처럼 스스로 빛나는 ‘별’같은 ‘마음’이 바로 “깨달을 성惺”입니다. 우리는 여러 종류의 깨달음 중에서 스스로 깨우친 사람을 ‘독각獨覺’ 또는 ‘독각자獨覺子’라고 합니다. “깨달을 성惺”은 이와 같이 별처럼 스스로 빛을 내어 도리를 깨닫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때때로 우리는 막연한 마음으로 깨달음을 기대하기도 합니다.


깨달으면 신통력이 생길까?
깨달으면 하는 일이 잘 될까?
미래를 예지할 수 있을까?  


등등, 막연한 상상을 합니다.
많은 ‘조사’들은 이렇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깨달음은 낮에 낮잠 자는 것 보다 쉽다”고~
깨달음이 뭐길래….
깨달음이란,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입니다. 시시한가요? ^^
하늘을 날아다니고 몸에서 금빛을 발하고 방광을 하는 것이 깨달음이 아닙니다. 자신이 지켜야 할 도리를 알고 지키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이렇게 쉬움에도 불구하고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 주변에 깨달은 사람은 의외로 적습니다. 매우 적습니다.


전철에서 크게 통화하고,
옆 사람이랑 정신없이 노닥거리고,
거리에 침을 뱉고,
콩나물 파는 할머니에게 깎아달라고 아우성이고,
담배꽁초는 길거리에 획 버리고,
횡단보도에 사람이 있든 말든 저 갈길 바쁘면 부릉~ 하고 지나가 버리고,
빨간 불에도 차가 오든 말든, 칠레면 치어봐 라는 격으로 느긋하게 횡단보도를 건너고,
소리 나게 껌을 째그닥 거리고 씹는가 하면,
자기 부인에게 지켜야 할 예의가 뭔지도 모르고,
자기 남편에게 해야 할 것이 뭔지 망각하는 등


이와 같이 제 멋 대로 살면서, 일요일은 절에 갑니다.
“지 심 귀 명 례” ~~~~~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기본적인 예의도 모르는데, 무슨 공덕에 일이 잘 되고 운이 따라붙기를 바라는 걸까요?
깨달음이란 ‘성惺’처럼, 스스로 작은 빛이라도 내야 합니다.
이런 말 있죠? “어이! 오늘 멋지네, 때 빼고 광낸 것 같아~”


마음의 때를 빼고 (예의를 좀 지켜고~)
광 내면 (남들 눈에 띌 정도로 말숙하게~)
그나마 깨달은 흉내라도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운 말을 쓰고….
아니, 이렇게 깔끔하고 고운 말 쓰고 예의 바른 사람에게 나쁜 일이 생기겠습니까?
좋은 일 생깁니다.… 필연적으로.… 가피가 찾아옵니다.…


아주 작은 일만 성실히 처리해도 우리는 주변에 인심을 얻습니다. 그 인심에 지극히 감사함을 느끼고 표하면 또 인심을 얻습니다. 그렇게 쌓이고 쌓이는 인심으로 우리는 성공의 가도를 열게 됩니다. 그러한 성실함이 생활 속의 작은 깨침이라도 찾아오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다 보면 가피도 맛보고 성불도 하게 되겠지요. 이것이 진정한 생활불교 아닐까요?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