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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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지혜, 단풍

홍성범
숲해설가


만산홍엽의 계절이다.
높은 산등성이는 물론 도심 가로수도 노란색, 붉은색 등으로 눈이 부시다. 우리들 마음도 심란해져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설악산 등 단풍 명소가 아니더라도 근처 공원에라도 나가 파란 가을 하늘과 함께 익어가는 나무와 숲을 가까이서 호흡하고 싶다.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숲의 다양한 변화에 대해서는 축복이다. 봄의 새순을 보라. 연하게 수줍게 돋아나는 연두색의 나뭇잎은 우리를 얼마나 설레게 하는가. 꽃보다 아름답다. 어린아이의 싱그러움으로 우리를 부른다. 봄꽃은 또 어떤가. 섬진강변에서 불어오는 매화의 향기를 시작으로 진달래, 생강나무, 산수유, 철쭉 등은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사람들을 산과 들, 야외로 이끈다. 꽃을 매개로 한 각종 축제도 전국에서 행해진다.
봄은 향춘객이란 말처럼 나무와 숲을 만나는 축복의 계절이다.
나무에게 있어 봄이 유년기라면 여름은 청년기이다. 여름의 나뭇잎은 훨씬 성장하여 연두색에서 짙은 초록색으로 변하고 광합성도 활발하다. 영양생장의 절정기다. 피톤치드의 분비가 가장 높은 여름 산은 숲에 있는 인간에게 더위보다는 상쾌함을 선사한다.
당연하지만 나무는 이러한 봄과 여름을 거쳐서 가을을 맞는다.
가을 단풍은 나무가 우리에게 잎으로 선사하는 색의 축제다. 이 축제는 봄꽃 축제 못지않게 전국 단풍명소들로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전 국토가 단풍행락객으로 주차장화 된다.
아름다운 단풍은 나무에게 있어서는 낙엽이 되기 전 단계이다. 단풍은 나무마다 다르고 같은 종류의 나무라고 하더라도 각기 다른 색으로 물들기도 한다. 주변 토양의 수분 함량에 따라 다르고 그 시기 주야 온도차에 따라서도 다르다. 나무의 줄기와 잎 사이에 ‘떨켜’가 있는데 이 떨켜가 통로를 막으면 나뭇잎에 남은 색소의 종류와 양에 따라 단풍의 색이 결정된다.
4계절이 뚜렷한 온대지방의 나무더라도 가을이 되어도 단풍이 들지 않는 나무가 있는데 이를 ‘늘푸른나무’라고 한다. 소나무, 잣나무, 주목 등 침엽수가 대부분이지만 사철나무, 동백나무 등 활엽수도 있다.
침엽수 중에서 메타세쿼이어, 낙엽송, 낙우송 등은 가을에 잎을 떨어뜨리므로 모든 침엽수가 늘푸른나무는 아니다.
잎을 떨어뜨리는 나무의 잎 수명은 대개 6~7개월이다. 4월에 새순이 나와 여름에 성숙하여 10월이나 11월에 떨어진다. 늘푸른나무는 새잎을 만드는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한번 만든 잎을 떨어뜨리지 않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잎의 수명이 길 뿐 잎을 떨어뜨린다. 소나무의 잎 수명은 2~3년, 주목의 잎 수명은 2~7년이다. 지난해 나온 잎이 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새잎이 나오는 것이다. 이듬해에도 다시 이듬해에도 반복되어 몇 년 전의 잎이 그대로 있으니 항상 초록을 유지하는 것이다.
활엽수 중에서 다른 나무에 비해 단풍이 늦게 드는 나무가 있는데 버드나무가 그렇다. 버드나무와 냇가에 있는 다른 나무들은 늦게 단풍이 드는데 바로 물 때문이다. 단풍이 드는 것은 낙엽이 되어 가는 과정인데 나무가 겨울에 잎을 떨어뜨리는 이유를 알면 이해가 된다. 잎을 구성하는 성분에는 수분이 많다. 날이 추워져서 그 수분이 얼면 세포가 죽는데 잎이 있어도 어차피 죽기 때문에 미리 떨어뜨리는 것이다. 잎이 살았다면 광합성을 계속할 것이고 증산작용도 일어나서 물이 필요한데 겨울에는 땅이 얼고 눈이 쌓여도 땅속에 바로 수분이 공급되지 않는다. 잎은 물을 뿜어내고 뿌리는 물을 흡수하지 못한다면 나뭇잎은 말라 죽는다. 이러한 현상을 미리 막기 위한 나무의 전략이 바로 스스로 낙엽을 만드는 것이다.
물 공급이 쉬운 곳이라면 또는 원래 물가를 좋아하는 나무라면 아무래도 잎을 늦게 떨어뜨려야 좋다. 그래서 버드나무나 물가의 다른 나무가 단풍이 늦게 드는 것이다.
소나무 등 침엽수는 잎에 부동액 같은 성분이 있어서 추워도 잘 얼지 않고 증산하는 양도 많지 않아서 물이 부족해도 잘 버틸 수 있다. 그래서 잎을 잘 떨어뜨리지 않는다. 침엽수이면서 잎을 떨어뜨리는 잎갈나무나 메타쉐쿼이어 같은 종은 대체로 사는 환경이 춥기도 하지만 건조하고 바람이 많이 분다. 그러한 환경에서는 잎을 달고 있는 것이 유리하지 않으니 침엽수인데도 잎을 떨어뜨리는 전략을 쓴다.
나무가 각각의 생존전략에 따라 잎을 유지하고 떨어뜨리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 잎을 유지하는 나무들의 단풍 색상은 어떻게 결정될까
가을에 나뭇잎의 색상은 변한다. 즉 단풍이 된다. 잎이 활동을 멈추면 엽록소가 파괴되고 자가분해가 진행되는데 엽록소의 자가분해 과정에서 안토시안이 생성되는 종은 붉은 색 또는 갈색 계열의 단풍이 되고, 안토시안이 생성되지 않는 종은 엽록소의 녹색에 가려 보이지 않던 잎 자체에 들어 있는 노란 색소들이 나타나게 되어 노란 단풍이 된다.
붉은색으로 물드는 나무들로는 단풍나무를 비롯하여 산벚나무, 화살나무, 붉나무, 옻나무, 산딸나무 등이 있다.
은행나무 잎처럼 노랗게 물드는 것은 잎 속에 카로티노이드라는 색소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 색소는 잎이 만들어질 때 엽록소와 함께 만들어지나 엽록소의 1/8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잎이 처음 만들어질 때는 엽록소에 의해 초록색을 띠지만 가을로 접어들고 엽록소가 파괴되면서 잎은 카로티노이드의 색깔인 노란색 또는 갈색으로 물들게 된다.
노란색으로 물드는 나무들로는 고로쇠나무, 느릅나무, 피나무, 플라타너스 등이 있다. 잎이 갈색으로 물드는 것은 안토시아닌 대신 타닌이 많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타닌은 안토시아닌이 만들어질 때처럼 설탕과 같은 물질이 화학반응을 거치면서 만들어지나 거의 마지막 단계에서 안토시아닌과는 다른 경로를 거치게 된다. 갈색으로 물드는 잎이라도 잎 속에는 많은 카로티노이드가 있으며, 또한 타닌과 안토시아닌이 함께 만들어지기 때문에 여러 가지의 색 조합을 나타낸다. 잎이 갈색으로 물드는 나무로는 느티나무, 칠엽수 등이 있다.
단풍은 날씨가 가을로 접어들면서 기온이 갑자기 떨어지는 해보다 기온이 천천히 내려가는 해에 더 아름답다. 갑자기 추워지면 단풍이 들기도 전에 낙엽이 되어 떨어져 버린다. 보통 하루 평균기온이 15℃, 최저기온은 7℃ 일 때부터 나타나며 우리나라는 설악산이나 오대산에서 시작하여 하루에 약 25㎞씩 남쪽으로 내려오고, 산에서는 약 40m씩 산 아래쪽으로 내려온다.
겨울은 나무에게는 어려운 시기이다.
나무는 추운 기온과 물 부족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 겨울동안 부족한 수분을 최대한 보존하고 자원을 절약하여 살아나고자 하는 나무의 생존전략의 결과가 바로 단풍이다.
올 가을에는 아름다운 단풍만 무심히 볼게 아니라 그 아름다움 이면에 있는 나무들의 치열함과 지혜도 헤아려 볼 일이다.